시행 전 받은 조의금 30만 원 자진 신고…오해받을 행동 자제
관공서 주변 음식점 '썰렁'…구내식당 '북적'·각자 내기 풍경

(전국종합=연합뉴스)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이틀째인 29일 전국의 공직 사회가 잔뜩 위축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직후 시범 사례에 걸려들 것을 우려해 공직자들이 너도나도 몸을 사리고 있다.

공직자의 발길이 끊긴 관공서 주변 식당가는 직격탄을 맞은 듯 썰렁했고, 대리운전 업계도 호출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지자체 등 관공서의 구내식당 이용자는 평소보다 늘어 북적였다.

부득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한 점심이나 저녁 자리 후에는 각자 먹은 음식값을 각자 내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 전국 지자체·경찰서 위반 신고 거의 없어

29일 전국 지자체와 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30분 현재 각 기관 감사담당 부서나 경찰관서에 접수된 위반 신고는 거의 없었다.

시행 첫날인 지난 28일 1건의 법 위반 신고가 접수된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이날 현재는 단 한 건도 신고되지 않았다.

강원지역도 전날 도내 한 경찰서 수사관이 '고소인에게서 배달 온 떡 한 상자를 즉시 돌려보냈다'는 내부 신고가 접수된 것 이외에는 전혀 없다.

관공서가 많은 대전·세종·충남지역도 지자체나 교육청, 경찰을 통한 신고 접수가 없었다.

다만 광주시 감사위원회에는 법 시행 전날인 지난 27일 광주시 공직자로부터 조의금 관련 자진 신고가 접수됐다.

최근 상을 치르고 조의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업무와 연관 있는 업체 측이 보낸 봉투에서 30만 원이 든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직원은 공무원 행동강령에 명시된 경조사비 권고액(5만 원) 이상은 반환하고 증빙 서류까지 제출했다.

서울의 일부 학교에는 '선물마감(선생님께 물질 아닌 마음으로 감사하기)'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 상자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상자에는 '물품 등을 가급적 소지하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 보안관실 앞 상자에 보관해 달라'는 안내문도 부착됐다.

제주지역에서는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때 음식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지에 대한 일선 학교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법 시행으로 불필요한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애매하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관가 주변 식당가 '썰렁'…관청 구내식당 '북적' 희비 교차

공직자들이 몸 사리기에 나서자 관가 주변 식당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 28일 오후 8시 청주시청 인근 중국음식점은 전체 예약실 9개 중 2개만 손님이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인근의 소고기 전문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16개 테이블 중 손님은 2명뿐이었다.

관공서나 기업체 예약 손님이 많은 한정식집도 사정은 김영란법 영향을 비켜가지 못했다.

청주시 흥덕구의 한 한정식집 관계자는 "손님이 평소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평소 5∼6개 팀의 예약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단 한 팀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관공서 주변 대리요청 건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대리기사 문모(40) 씨는 "시청이나 도청 주변에서 하루 평균 3∼4건의 콜을 받는데, 지난 28일 이후에는 1건밖에 없었다"며 "회식 자체가 줄어든 탓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면 관공서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이용객 수가 크게 늘어 북적였다.

법 시행 이후 점심 배식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개별적으로 식권을 구매하는 모습이 부쩍 늘었다.

일부 지자체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식수 인원이 20%가량 늘었다.

전남 나주에서 이날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전 질의를 마친 의원들도 사옥 2층 구내식당에서 곰탕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날 의원과 보좌관 등 국정감사단 42명이 먹은 식비 42만 원은 농수위 국감운영비로 치렀다. 1인당 1만 원 상당의 식단에 의원들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 "김영란법 저촉될라"…지자체 가을축제도 '위축'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 사회가 잔뜩 몸을 사린 가운데 가을축제를 앞둔 지자체는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관행적으로 해온 초대권 발행이나 만찬이 김영란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가을축제를 준비 중인 지자체는 만찬 행사를 줄이거나 아예 취소하기로 했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는 만찬 행사는 취소하고 필요하면 간식 위주의 '스탠딩 형식'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영·박지호·손상원·정회성·한종구·전창해·이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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