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승리해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일순간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개표 소식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트럼프의 당선 확정을 알리는 방송 자막을 보곤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주류 기득권 정치에 대한 미국민의 광범위한 불만이 터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양극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저소득 백인계층의 분노가 기존 정치권을 심판했다는 해석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어떤 분석에도 한인들을 포함한 소수 이민자들에게 트럼프의 당선은 그저 충격일 뿐이다. 

 트럼프의 막말과 기행은 그야말로 열거하기 조차 힘들다.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나마 약과다. 무슬림이나 불체자들에 대한 적대 발언 외에 특유의 여성 비하는 대선 내내 그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기혼 여성과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으려 한 사실이 담긴 비디오가 공개되고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한 유명 흑인 가수가 "이런 사람을 미국 대통령이라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고 내뱉은 탄식은 단지 그 한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게다. 진정 우리 자녀들에게 할말이 없다.

 선거 전 유권자의 표심을 조사하고 힐러리 클린턴의 압도적 우세를 점쳤던 각 언론사의 여론 조사는 또 어떤가. '기득권 정치인' 이미지를 벗지 못한 클린턴보다 '강한 리더십'을 보여준 트럼프를 응원하는 숨겨진 민심을 제대로 엿보지 못했다. 어느 칼럼니스트의 분석처럼 유권자들이 목소리 높여 외쳤으나 대부분의 언론이 귀를 막고 잘못 짚었다는 자괴감도 든다. 선거 하루 전날 힐러리의 당선 확률이 무려 90%가 넘는다고 '자랑스럽게'보도한 미국 언론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선거가 끝나고 승패가 결정됐으나 트럼프의 당선에 불만을 표시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구호도 보인다. 당선자가 나왔는데 인정하지 않겠다니…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미국은 실패한 나라, 실패한 사회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역사상 가장 추잡한 선거', '최악의 막장 선거' 등으로 평가된 싸움에서 승리한 트럼프로서는 두 쪽으로 쪼개진 미국 사회를 통합하는 과제를 푸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언행을 일삼아온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은 지금보다 더한 분열상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有口無言(유구무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