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는 벗었지만 성매매·사기혐의…이미지에 치명상
'유명인 상대 무고는 큰 죄' 경각심 고취 계기도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올해 연예계 안팎을 가장 뜨겁게 달군 추문으로는 단연 가수 겸 배우 박유천(30)씨의 성폭행 피소사건을 꼽을 수 있다.

'젠틀'한 이미지의 한류스타가 단지 성범죄에 휘말린 것을 넘어 일주일 새 무려 4명의 유흥업소 여성에게서 줄줄이 피소되자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고소 여성이 박씨에게 수억원을 요구한 정황이 불거지고, '양은이파', '일산식구파' 등 폭력조직 이름까지 오르내리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경찰이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한 달여간 수사한 결과 박씨는 성폭행 혐의를 벗었지만, 성매매와 사기 혐의를 받아 당당할 수만은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씨 측이 무고 혐의로 맞고소한 여성들은 결국 혐의가 인정돼 유명인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고소·고발 심리에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 잇달아 나타난 4명의 여성…"화장실에서 성폭행"

발단은 6월 10일 경찰서에 제출된 한 장의 고소장이었다.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 A씨는 업소의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장 제출 사흘 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같은 달 15일 A씨는 돌연 "강제성 없는 성관계였다"며 고소를 취소했다.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것 같던 사건은 같은 달 16일과 17일 다른 유흥업소 여성 3명이 나타나 박씨를 같은 혐의로 고소하면서 더 커졌다.

고소 내용은 대동소이했고, 피해 장소가 '화장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4명 모두 업소 화장실이나 박씨의 집 욕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첫번째와 두번째 고소 여성을 무고 등 혐의로 맞고소했다.

하지만 고소 여성이 여러 명이고, 피해를 봤다는 공간적 배경이 공교롭게도 모두 화장실이어서 여성들의 피해 주장은 점점 신빙성을 얻어갔다.

피소 당시 박씨는 강남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이어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복무 중 연가와 병가를 다른 사회복무요원보다 훨씬 많이 쓴 사실까지 알려져 근태 논란과 특혜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관련 보도가 연일 인터넷과 TV 뉴스를 달구자 경찰은 이례적으로 박씨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신속한 진상 규명에 나섰다.

◇ 드러난 협박·무고 정황…가해자가 피해자로

박씨는 피소 20일 만인 6월 30일 경찰서에 처음 출석한 것을 시작으로 7월 8일까지 6차례나 직접 경찰서로 나와 조사를 받았다.

고소인이 4명이나 된 만큼 경찰이 확인할 내용도 많았다. 박씨는 첫 출석 당일에만 장장 8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는 등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다.

경찰은 고소한 여성들도 차례로 불러 조사했고, 사건 발생 당시 술자리 동석자들도 참고인으로 소환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 가해자로 몰린 박씨가 무고·공갈의 피해자로 바뀌는 국면이 찾아왔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첫 고소 여성 A씨에게 조력자들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이 박씨 측에 고소를 빌미로 수억원을 요구했다는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A씨 남자친구와 폭력조직 일산식구파 출신인 사촌오빠가 박씨 측에 거액을 요구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지라시'(사설 정보지) 형태로 돌기도 했다.

여기에 한때 양은이파로 활동했던 박씨 소속사 대표 부친이 직접 사태 해결을 위해 A씨 측을 만난 사실이 알려져 '조폭 연루설'까지 등장했다.

A씨 측은 박씨 측에 당초 10억원을 부르려다 금액을 낮췄다며 5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 측은 이런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했다.

고소 여성들의 무고·공갈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은 양측 사이에 1억원이 오간 정황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일부 금액은 소속사 관계자를 거쳐 A씨 측으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여러 정황을 볼 때 고소 여성 4명 중 박씨가 맞고소한 1·2번째 여성들의 고소 내용은 상당 부분 허위사실이라고 경찰은 판단했다.

◇ 결국 성폭행은 무혐의…성매매 혐의는 인정

1달여간 진행된 경찰 수사에서 최대 쟁점은 박씨과 고소 여성들 간 성관계에 강제성이 있었느냐였다.

형사법상 성폭행은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협박·폭행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한 상태에서 강제로 성관계했을 때 성립해 강제성 유무와 정도가 핵심이다.

경찰은 첫 고소 여성이 제출한 속옷을 분석, 박씨의 DNA를 검출해 당시 성관계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박씨도 당시 여성과 성관계를 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합의하에 한 성관계'였지 강제는 아니었다고 줄곧 주장했다.

수사 결과 경찰은 "성관계 당시의 강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박씨에 대해 성폭행 무혐의 처분했다.

고소 여성들의 진술과 주변 정황 등을 종합할 때 박씨가 성관계 당시 고소 여성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등을 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고소 여성들은 박씨와 성관계 도중 '싫다'는 의사는 피력했지만, 박씨가 자신들을 폭행하거나 협박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가 성폭행은 아니더라도 성매매와 사기를 저질렀을 개연성은 크다고 판단해 관련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박씨와 고소여성 중 1명과의 성관계를 성매매로, 박씨가 이 여성에게 성매매 대가로 금품 지급을 약속하고도 지불하지 않은 것은 사기로 봤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한 여성 가운데 일부는 도리어 피의자로 입건되는 처지가 됐다. 경찰은 1·2번 고소여성들의 고소 내용을 허위로 판단했고, 첫 고소 여성 A씨는 무고와 공갈미수 혐의로 사촌오빠와 함께 구속됐다.

◇ 박유천 이미지 타격…'무고는 큰 죄' 각인 계기

박씨는 경찰 수사결과 성폭행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지만, 이는 박씨에게 결국 상처뿐인 승리로 평가된다.

이 사건은 고소 여성들이 유흥주점에서 일했다는 점과 사건 발생 장소가 화장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였다.

과거 박씨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는 대상으로 화장실 변기를 그린 사실까지 알려져 그의 이미지는 더욱 추락했다.

잘 생긴 외모에 신사적 이미지였던 박씨였지만, 사건 발생 장소인 화장실을 언급하며 그를 조롱하는 농담들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성폭행은 무혐의로 드러났지만, 성매매와 사기 혐의는 수사 단계에서 인정된 터라 연예인으로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박씨 사건은 상대방이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을 악용해 송사를 빌미로 돈을 뜯으려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도 있다.

첫 고소 여성이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바뀌고, 구속까지 되는 상황이 연출되자 '무고 사범은 무겁게 처벌된다'는 인식이 커졌다.

박씨 사건이 잦아들 무렵인 7월 12일 배우 이진욱(35)씨도 성폭행 혐의로 피소돼 연예계는 또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수사 결과 이 역시 무고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이씨를 고소한 여성은 성관계 당시 강제성이 없었다며 진술을 뒤집어 변호인이 "의뢰인과 신뢰관계가 깨졌다"며 중도에 사임하기도 했다.

피소 직후 경찰에 출석한 이씨는 취재진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제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이 무고하는 것을 정말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무고는 정말 큰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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