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번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꺼내 드는 게 좀 망설여지는 건 올해가 처음이네요."  오늘 LA 지역서 열리는 제98주년 3·1절 기념 행사를 앞두고 관련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의 말이다. 

 광복절과 함께  3·1절은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뜻깊은 날이어서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들고 흔드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3·1절은 태극기를 흔드는 일과 관련해 이전  3·1절과 다르다. 자칫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박사모를 비롯한 탄핵 반대 보수단체들이 태극기를 앞세운 대규모 집회를 수차례 열면서 '태극기=탄핵 기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탄핵 찬반을 떠나 태극기를 들고 흔드는 것이 자칫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선 3·1절 행사를 준비하는 지자체들은 태극기 흔들기를 대신하거나 취소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는 기관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중에서도 3·1절을 맞아 각 아파트에 게양한 태극기를 놓고 '어색하다', '부적절해 보인다' 등의 의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3·1절 기념행사는 오늘 LA한인타운에서도 열린다. 박근혜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태극기 구국 물결 행사'도 오천만 태극기구국만세운동 미주본부 주최로 LA총영사관 앞에서 오후 2시부터 열린다.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나타내는 보수층 의견에 동조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충분한 이유가 이곳 한인타운에서도 있게 된 셈이다. 

 LA한인회 관계자는 "태극기에 대한 특정 정치 성향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념 행사에서 연설할 인사들에게 하루 전에 한국의 현시국과 관련된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태극기가 등장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집회 주최자에게 물어보아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다만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하니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집회에 사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그 사이 태극기는 어느새 특정 정치세력의 상징이 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집회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스스로를 '태극기 집회' 또는 '태극기 부대'라고 칭한 후부터 태극기는 한 세력의 상징이 됐다. 

 우리는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시대에 살게 됐다. 우리의 의식도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버렸다. 거기에 어떤 설명이나 이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슬픈 우리의 상황이다. 오늘 3·1절은 그야말로 태극기 수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