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00년 대선…고어, 재검표 소송전서 깨끗한 승복
英, 브렉시트 분열 앞 총리·야당 대표 "국민의 뜻 따른다"
브라질, 대통령 탄핵 후 빠른 정부 재구성·개혁과 정국안정 주력

(워싱턴·런던·상파울루=연합뉴스) 이승우·황정우 특파원 김재순 통신원 = 외국에서도 반으로 쪼개진 극심한 분열을 극복하고 나라를 추슬러 나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패배한 쪽이 불만족스러운 결과에도 깨끗이 승복했고, 지도자들은 분열상 속에서도 법과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며 나라를 차분하게 이끌어 나갔다는 특징이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대결해 전국에서 54만 표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러나 선거인단 수에서 266대 271로 밀려 패배했다.

문제는 고어가 근소한 차로 패배해 선거인을 몽땅 빼앗긴 주에서 일부 재검표 결과 고어의 표가 상당수 무효 처리된 것이 발견되면서 생겼다. 전체 재검표를 하면 결과가 충분히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로 양분돼 싸웠다. 양측은 소송전을 이어갔고 36일을 다툼에 쏟았다.

그러나 결국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판결이 나자 고어는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연설에서 "개인적으론 동의 못 하지만 연방대법원 판결을 수용한다"며 "분열하기보다 화합이 절실함을 깨달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본인의 정치적 욕심보다 국민 화합이라는 '대의(大義)'를 택한 것이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보다 280만표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인 수에서 밀려 패배하자 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불복을 요구했지만 힐러리는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승복해 분열을 막았다.

이런 패배 승복 문화는 한쪽에서 상대 진영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가 파국을 맞은 사례가 역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1860년 대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공화당 후보는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제1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남부 백인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지난해 6월 24일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이른바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영국을 '탈퇴'와 '잔류'로 양쪽으로 갈라놓았다.

결국 투표 결과도 탈퇴 51.9%, 잔류 48.1%로 여론 대립이 팽팽했음을 보여줬다.

재투표 청원이 시작되자 100만명이 서명했고 수만 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이어 가는 대혼란이 이어졌다.

여진은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나는 동안 멈추지 않고 있으나 영국 사회는 극단적 혼란에서는 벗어났다.

국민투표 이후 취임한 테리사 메이 총리는 새 내각을 탈퇴파와 잔류파를 핵심 요직에 포진해 아우르는 통합 내각으로 꾸리는 한편, 브렉시트 결정을 거부하겠다는 여론에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뜻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메이 총리는 결국 잔류파가 가장 우려하고 반대하던 EU 단일시장에서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로까지 방향을 정했지만, 예상보다 반발은 크지 않았고 비교적 평온하고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제1야당 노동당은 국민투표 기간 EU 잔류가 공식 입장이었고 결국 참패했지만, 제러미 코빈 대표는 당내 주류세력 반발 속에서도 브렉시트 이행과 관련된 중요 고비마다 "국민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한쪽에선 회복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영국 경제가 지난해 3∼4분기 연속 0.6% 성장하고 소비심리 위축 현상도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등 경제지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며 국가가 분열됐다는 점에서 브라질에서도 취사선택해 배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8월 31일,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5개월에 걸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브라질 사회 역시 홍역을 앓았다. 탄핵 찬반 시위대는 저마다 탄핵에 찬성 또는 반대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이 확정되고 나서 현재까지 혼란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브라질은 나라를 추스르기 시작했다.

호세프는 탄핵안 가결 하루 만에 대법원에 탄핵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수용하고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을 떠났다.

정·부통령제에 따른 빠른 새 정부 구성도 정국안정에 도움이 됐다.

부통령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미셰우 테메르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최종 가결되자 곧바로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해 개혁 과제를 제시하고 정국안정에 주력했다.

테메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아직 높지만, 경제 역시 브라질 사상 최악의 위기 국면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대통령 탄핵 사태가 초래한 극단적 충격은 서서히 가라앉는 것으로 평가된다.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