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 장면 하나. 지난 12일 오후 7시16분께 청와대를 출발한 박 전 대통령은 20분 만인 오후 7시37분 삼성동 사저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승용차에서 내려 친박계 의원 등을 보더니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고, 자신을 마중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저로 들어가기 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깊은 침묵을 지켜오던 박 전 대통령은 사저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 장면 둘. 1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장.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씨가 지난해 6월 불륜설이 제기된 후 9개월만에 한국 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영화 내용 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먼저 쏟아졌다. 김민희씨는 "진심을 다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있다"며 "나에게 놓여진 다가올 상황이나 놓여진 상황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하루 사이를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영화배우 김민희씨에게서 나온 말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두 사람의 말은 다른 듯 보이지만 어찌보면 하나다. 한 사람은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이라 그의 메시지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다른 한 사람은 유부남을 사랑한 '불륜'의 죄를 지은 개인이라 그의 말은 당연히 개인적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상황을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방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대국민 사과나 헌재 결정 승복, 그리고 화합 등 마땅히 전직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말 대신 박 전 대통령의 짧은 말은 자신을 탄핵으로 이끈 진실이 왜곡돼있으며 자신은 여전히 억울한 피해자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게 한 것은 박 전 대통령 자신이다.

 그간 특검과 헌재는 진실이든 변명이든 나서서 밝히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거부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피해자 코스프레의 말 속에서 일말의 뻔뻔함이 묻어난다.

 김민희씨는 홍상수 감독과의 관계를 공식 인정했다.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에서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예술적 장치 중 하나가 불륜이지만 불륜은 어디까지나 불륜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불륜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부인에 대한 사과나 미안함이 김씨의 말에는 없다. 물론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덕적 책임마저 면하기는 힘들다.

 불륜 때문에 아파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에서 김씨의 말은 너무 이기적이고 뻔뻔하다.

 '진실과 진솔'을 말한다는 두 사람의 말엔 오직 자신들만 있을 뿐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과 가정을 지키려 마음 아파하는 가족은 없다. 그래서 더 우울한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