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테러 최고 역량 뽐내던 '무풍지대' 영국마저 뚫렸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영국 런던에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테러는 보행자들을 겨냥한 차량돌진이라는 수법 때문에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부지불식간에 당할 수 있는 테러여서다.

안보·대테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작년 프랑스 니스, 독일 베를린에서의 차량 테러 모방범죄로 보고 그 위험성에 대한 재평가에 돌입했다.

런던의 중심부인 런던 브리지와 의회 근처에서 발생한 테러에는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현대 i40가 악용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로서 대테러 당국의 감시를 받아오던 범인은 행인들에게 차량을 돌진, 최소 5명을 살해하고 40명을 다치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 7월 니스, 12월 베를린에서는 범인이 각각 19t 트럭을 몰고 비슷한 광란의 질주를 벌여 수십명 사상자를 낸 바 있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차량돌진 테러가 최근 들어 나타난 신종 수법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차량돌진 범죄가 있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2014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속에 동예루살렘,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도 유사 테러가 빈발했다.

대표적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가 차량을 테러 도구로 쓰라는 지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

이런 뚜렷한 동향 때문에 대테러 당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차량돌진 참극을 경계해왔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0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체육행사, 여가시설, 쇼핑센터 등이 차량돌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차량돌진 테러가 너무 원시적이라서 너무 위험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상업용 트럭이나 개인 승용차, 그런 차량을 모는 운전자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일상의 일부인 까닭에 대테러 감시망을 자연스럽게 회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IS도 공식 테러 지침서를 통해 작년 니스 테러를 거론하며 차량 테러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S는 해당문건에서 "차량은 칼처럼 손에 넣기가 극도로 쉽지만 칼과 달리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적었다. 영국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대테러 전문가 라파엘로 판투치는 WSJ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성공사례를 흉내내기 마련"이라고 이번 테러를 모방으로 해석했다.

IS의 거점에 합류해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소위 '외로운 늑대'들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법으로 주목하는 것이다.

미국 국토안보부도 "차량을 쓰면 훈련이나 경험이 적어도 총기나 폭탄 없이 쉽게 테러를 할 수 있어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에게 매력적 전략"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대테러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테러를 원시적 도구를 악용한 자생테러의 위험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로 보고 있다.

영국은 미국과 달리 총기규제가 엄격하고 대테러 감시망도 촘촘해 재작년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처럼 테러범들이 군사작전과 같은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영국 버밍엄대의 테러 전문가 스티브 휴잇은 미국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영국이 조용한 데는 실제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아일랜드공화군(IRA)과의 분쟁 때문에 대테러 경험이 풍부하고 법제도 잘 정비돼 있으며 경찰을 비롯한 보안기관들의 조직력도 강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만큼 이번 차량돌진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점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테러의 시대에도 '무풍지대'로 지낸 자존심에 상당한 타격으로 풀이된다. 휴잇은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갑자기 보행자를 치기로 작심한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고 난제를 다시 거론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