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도 아닌 것이, 노숙자도 아닌 것이…'

[뉴스포커스/미국서 이런 일이]

리모델링한 후 비워 둔 렌트 하우스서 두달간 몰래 불법 거주
자기 집처럼 살던 라틴계 3명, 주인 마주치자 그대로 줄행랑 
이웃엔 "새로 이사왔다" 인사까지…우송된 신용카드도 사용
전문가 "가짜 입주계약서로 법적 분쟁도, 알람등 예방 철저히"

 장모(55·남)씨는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고 마지막 지붕 공사를 앞둔 자신의 렌트 하우스 뒷마당 잔디를 낯선 사람이 깎고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라틴계로 보이는 낯선 사람은 한 명이 아니라 여자 둘에 남자 하나, 자그마치 세명이나 됐다. '내집에 누군가 몰래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장씨는 황당하면서 소스라치도록 겁도 났다. 

 ▶남의 집서 잔디도 깎아?

 전후 이야기는 이렇다. LA에 거주하는 장씨는 사우스베이 인근에 13년 전 구입해 렌트를 줘왔던 4베드룸 집 한채가 있다. 작년 7월 세입자와의 계약이 끝나 이 집을 팔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고, 올 초 리모델링은 마무리됐다. 그런데 지붕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하려고 했으나 큰 비용 때문에 고민하던 중 두달째 그대로 비워둔 채 놔두고 있었다. 

 가끔 들를 때마다 우편물만 확인하고 열쇠로 단단히 채우놓은 집 내부는 아무일 없겠지 하고 지나친 것이 화근이었다. 우편함 속엔 낯선 영어 이름의 우편물이 들어있거나 본인이 기다리는 우편물이 분실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이같은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여느날과 같이 주일 교회에 가기 전 잠시 들른 장씨와 집 뒷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다가 눈이 마주친 그 여성은 장씨가 다가가자 잔디 장비를 내던지고 부리나케 도망쳤고, 곧바로 집 안에 있던 또 다른 여성 한 명도 뛰쳐나갔다. 

 장씨는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크게 놀라 겁이 나지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 안 거실에는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잠을 자고 있었다. 집안엔 각종 살림살이까지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기가막혔다. 

 "당신 누구냐"는 장씨의 고함소리에 잠이 깬 남자는 오히려 장씨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되물었다. 장씨가 "내가 이 집 주인이다"고 말하자 이 남자는 그제서야 말꼬리를 흐리며 본인의 필요한 짐을 챙겨 도망치듯 집을 뛰쳐 나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옆집 이웃들에 따르면 이 무단 침입자들은 "우리는 이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라고 소개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다. 이들 침입자들은 집에 우송된 장씨 이름의 미국 백화점 크레딧카드를 사용한 후 자신들이 대금을 갚기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인터넷에 빈집 광고, 돈 챙기기도

 장씨는 "비워둔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서 사는 침입자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막상 내게 닥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큰 피해가 없었고, 혹시나 홈리스나 갱단이었으면 어떡할 뻔 했겠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씨의 말처럼 장씨 사례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부동산 업계와 변호사들에 따르면 예년에 비해 쌀쌀한 겨울 날씨를 피해 빈 집을 찾아 몰래 들어 사는 노숙자들이 급증했으며 또는 허위로 조작한 가짜 리스계약서를 만들어 집주인이 휴가나 차압 등으로 장기간 비운 집에 들어가 '내 집 처럼'거주하는 무단 침입자들이 많아지면서 피해 사례 또한 늘고 있다.

 부동산·상법 전문 변호사인 이승호 변호사는 "비워있는 집들을 타깃으로 가짜 중개업자가 집 주인 몰래 크레이그리스트 등 인터넷을 통해 렌트 광고를 내고 현금을 챙기는 사기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하고 "이같은 불법 거주자들 때문에 본의아니게 집 주인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낯선 침입자의 경우라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맞닥뜨리기 보다는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하고 "잠시 비워둔 집이라도 알람 설치 등 집 주인의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