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점차 현실화돼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한미 FTA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 비해 '후순위 관심사'여서 당장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우리 정부의 꾸준한 설득 속에서 지난 3월 말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FTA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간해 한미 FTA 재협상론이 수그러들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전후해 작심한 듯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재협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2일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들(한국 정부)에 (한미 FTA) 재협상 방침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편파적인 협상이 아닌, 공정한 협상을 원한다"며 "우리가 공정한 협상을 하게 되면 미국은 매우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FTA와 NAFTA의 미국 측 협상을 이끌 USTR 대표로는 '대(對) 중국 강경파'이자 보호무역주의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확정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공식적인 요청을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 측(USTR)으로부터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면서 "아마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horrible)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도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 4일 통상 전문가와의 간담회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비롯해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이 진행 중인 무역협정 조사에 집중적으로 대응할 '미국 무역협정분석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지난 10일 출범한 새 정부는 통상의 중요성을 고려해 청와대 직제에 통상비서관을 신설했다.

또 통상비서관을 수석비서관 아래 두지 않고 직속기구화해 정책실장이 직접 챙기도록 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한미 FTA 재협상 등 통상현안이 산재한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통상체계가 갖추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새 정부 내 통상조직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은 불안요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업부에 있는 통상조직을 외교부로 돌려놓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통상비서관 신설을 통상조직 개편 및 격상을 위한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직개편안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썬 통상이 분리될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50 대 50"이라며 "관련 부처들은 '정중동'(靜中動·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속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