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이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지난 2014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예감한 것이었을까.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낸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다시 한번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하의 참사’로 사실상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 사령탑에 오르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유쾌한 도전’을 슬로건으로 세계와 당당히 싸워 한국 축구의 저력을 펼쳐보였던 허 감독의 지도력에 국민들과 축구팬들이 희망을 걸게 됐다. 

대한축구협회 15일 파주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 감독의 중도 퇴진을 공식화했다. 축구계의 관심이 ‘포스트 슈틸리케’에 쏠린 가운데 허 부총재가 후임 사령탑을 맡는 것으로 축구협회 수뇌부들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허 부총재는 지난 14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카타르 원정에서 2-3으로 패배하며 슈틸리케 감독의 퇴진이 유력해진 순간부터 차기 사령탑 1순위로 주목받아 왔다. 그 예상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는 흐름이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과 동반 사퇴를 선언한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고별 인터뷰에서도 허 감독이 낙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잘 드러났다. 

이 위원장은 “감독 선임은 다음 기술위원회와 기술위원장이 결정할 일이지만 국내 감독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고 의견을 전한 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치열한 경험을 해 본 감독이어야 한다”는 말로 한 가지 조건을 더 보탰다. 새 사령탑이 공식화되기 위해서는 신임 기술위원회의 추천과 축구협회 회장단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지만 그동안 기술위를 책임졌던 이 위원장의 마지막 고언은 무게감을 가진다.  

이 위원장이 제시한 ‘한국인 감독+최종예선 경험자’는 새 사령탑의 양대 조건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현재 허 부총재 밖에 없다. 김정남 한국OB축구회 회장(1986년),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1990년), 김호 용인축구센터 총감독(1994년), 차범근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회장(1998년)도 월드컵 최종예선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지만 이미 감독직 은퇴를 선언했거나 현실적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기 어렵다. 이 위원장의 생각은 단 사람, 허 부총재를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허 감독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태세다. 그는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현재 상황에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승부를 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실패하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승부사 기질이 필요하다”며 지금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필요한 덕목을 거론한 뒤 “요즘 선수들을 보면 의식이 사라진 모습이다. 공을 받은 선수도 받아야 될지 생각없이 움직이고 있다. 각자의 성향과 플레이 특징이 있는데 한 팀이라면 서로의 그런 특징을 꿰고 있으면서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할지 의식적으로 예측하고 그 주변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보인다”고 지금 태극전사들의 아쉬운 점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남은 최종예선 2경기에선 이란과 홈 9차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나서서 어떻게든 승점을 따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게 승점이 뒤진 채로 원정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이란전 총력전’ 태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부총재는 “(지금 시점에서)젊은 지도자들을 내세우는 것은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개인적으로는)생각하고 있다. 부담도 크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처럼 좋은 지도자를 일찍 잃을 수도 있다”며 “(축구협회의)제안이 온다면 주위 분들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국가대표팀 감독직 수락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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