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 클라이번 첫 한국인 우승자…"다른 대회보다 5~6배 이상 노력"
"내가 경험한 치유와 행복, 위로 전할 수 있는 진실한 연주자 되고파"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제 소홀함과 나태함으로 중요한 콩쿠르에서 안 좋은 결과를 받았던 적이 있어요. 나이 제한 때문에 이번이 제가 참가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콩쿠르였던 것 같은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참가했던 콩쿠르에서 얻은 우승이라 더 값집니다.

세계적 피아노 경연대회인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선우예권(28)은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제가 간절히 원했던 기회들을 얻게 돼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선우예권은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차이콥스키·쇼팽·퀸엘리자베스에 견줄만한 권위를 인정받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우승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이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국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터라 선우예권의 우승에도 음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는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이력에 빛나는 첫 줄을 추가했지만, 이전에도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7번 우승하며 '콩쿠르 왕'으로 이름을 떨쳐왔다.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2014년),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년) 등에서 줄줄이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콩쿠르 우승에도 불구, 다시 콩쿠르에 나가게 된 이유에 대해 "제 인생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사실 조성진이 우승한 쇼팽 콩쿠르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봤던 적이 있다. 다른 콩쿠르 일정과 겹쳐 제대로 준비를 못 했던 게 패인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더 부지런히, 더 일찍 준비했기 때문에 자신감은 있었다"며 "다른 콩쿠르보다 5~6배 이상 준비한 것 같다"며 웃었다.

"쇼팽 콩쿠르 때는 어떤 면에서 조금 자만했던 것도 같아요.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주변에서 이렇게 일찍부터 준비하면 지치지 않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긴장감도 컸다.

"준결선에서 결선 진출자를 호명할 때 제 이름을 듣고 일어나다가 살짝 휘청였어요. 그래서 의자에 머리를 살짝 부딪치기도 했죠.(웃음) 콩쿠르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콩쿠르가 아닌 연주를 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려 많이 노력했어요."

선우예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를 따라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연주자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한 셈이다.

"커리어를 쌓기보다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콩쿠르를 매년 2~4회씩 나갔다"고 말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못했다.

실력에 비해 국내에서 덜 알려진 편이기도 했지만,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그는 연주 인생에 새 전기를 맞게 됐다.

그가 결국 이루고 싶은 연주자로서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제가 음악을 통해 경험한 치유와 행복, 위로와 같은 감정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진실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2월 두 차례의 독주회로 관객과 만날 계획을 갖고 있다.

콩쿠르 우승 이전 잡혀있던 12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600석 규모) 리사이틀 티켓이 우승 소식이 전해진 당일 매진을 기록함에 따라 12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천석 규모)에서의 독주회를 추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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