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권위의 여자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포함해 상위권을 사실상 독식하면서 갖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무엇보다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여자 골프와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제의 중심에 올라 눈길을 끈다.

대회가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쳐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골프장, 그것도 그가 가장 아끼는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렸고, 유럽 순방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이곳으로 직행해 경기 대부분을 관람했다는 점에서 이런 성적에 가장 머쓱해진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US여자오픈이라는 대회명이 무색하게 코리안 시스터스는 박성현의 우승을 필두로 톱10 입상자 중 8명을 배출하는 등 리더 보드 상단을 태극기로 가득 채웠다.

US여자오픈이 아니라 '트럼프 배(盃) 한국여자오픈'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가장 많은 55명이 출전했지만, 72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단 1명도 10위권에 입상하지 못하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공동 15위였던 리젯 살라스가 미국 선수 중 최고였다. 그녀 역시 미국국적이지만 멕시코계다.

공교롭게도 '미국 우선'을 외치는 대통령이 자신의 '안방'에서 직접 지켜보던 대회에서 받아든 성적표다.

그러자 안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 언론들은 17일 일제히 이번 대회 결과를 대통령과 엮어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대표적 '가짜뉴스' 뉴욕타임스(NYT)는 "마지막 날 리더 보드에는 상당한 아이러니가 존재했다"면서 "'미국 우선'을 설교하는 골프장 주인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했지만, 미국 골퍼들은 사상 처음으로 톱10 안에서 경기를 마치는 데 실패했다"고 비꼬았다.

NYT는 2라운드부터 만사를 제쳐놓고 줄곧 경기를 직접 관람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시상식에는 불참하고 차남 부부만 참석시킨 대목도 지적했다.

만약 미국 선수가 우승했다면 '골프광'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시상식에서 직접 우승컵을 건네는 '극적 효과'를 통해 추락하는 지지율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골프닷컴도 최종 라운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관람하던 15번 홀까지 단 1명의 미국 선수도 '톱15'에 들지 못했던 점을 거론하며 "'미국-우선 대통령'은 15번홀에서 리더 보드의 스릴을 즐길 수 없었다"면서 "미국 선수가 하나도 없었지만, 코스와 대통령 부인은 아름다웠다"고 꼬집었다.

USA투데이는 미국 골퍼들의 부진을 비판하면서, '국적과 관계없이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의 경쟁이 빛났다'는 취지의 미국골프협회(USGA) 성명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대선 구호를 새긴 모자를 트럼프 대통령이 관람 기간 내내 썼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이 신문은 이어 "다음부터 그 모자에 쓰인 문구는 '미국을 다시 골프 하게(Make American Golf Again)'로 읽혀야 할 듯하다"고 풍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