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잃은 남성·교대근무 나가다 숨진 경찰관 등 사연 봇물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허리케인 하비가 쏟아낸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익사한 어머니의 등에 매달린 채 버티다 가까스로 구조된 3세 여아가 건강을 회복해 30일(현지시간) 퇴원한다.

AP통신과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은 이 3세 아이를 비롯해 허리케인 하비 피해자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엄마 등에 매달린 채 덜덜 떠는 모습으로 발견된 3세 여아는 저체온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현재 매우 건강하다"고 텍사스주 보몬트 경찰서의 캐럴 라일리 경관은 밝혔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의 죽음을 모르는 듯 밝은 모습이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라일리 경관은 "재잘거리는 모습에 병원과 경찰서 직원들이 모두 이 아이에게 푹 빠졌다"고 전했다.

경찰은 구조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된 어머니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 같으며, 그 덕에 어린 딸이 목숨을 건졌다고 밝혔다.

헤일리 모로우 경관은 익사한 여성의 신원이 콜레트 설서(41)로 확인됐다며 이같은 목격자 증언을 소개했다.

주차장에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로 차를 뺄 수 없게 된 설서가 딸을 등에 업은 채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려 했는데 그사이 주차장 옆 배수시설의 물이 넘치며 모녀를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시간당 50㎜의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경찰과 소방 구조팀이 모녀를 발견해 구조했으며 설서에게는 응급처치를 했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모로우 경관은 "발견 당시 아이는 그나마 물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며 어머니가 딸을 끝까지 업고 있었던 덕에 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로우 경관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아이를 구하려 한 모성애의 증거"라며 "참담하다" 말했다.

안타까운 사연은 이 모녀만이 아니다.

한 남성은 고령의 부모님과 어린 자녀들을 승합차에 태워 대피하다가 급류를 피하지 못해 일가족을 잃었다.

이 남성은 물에 잠긴 차 안에서 가까스로 안전벨트를 풀고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빠져나왔으나 80대인 부모님과 6~16세의 어린 자녀 4명은 그대로 수장됐다.

구조대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이 남성을 발견해 구조하고 차량 수색에 나섰지만 사흘이 지나서야 찾아냈다.

살아남은 남성의 동생은 형이 다리를 건너던 중 차 바퀴가 웅덩이에 빠지면서 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며 "형은 가족을 홍수에서 구하려 한 것인데 이런 일이 생겼다. 형이 계속 자책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년을 한결같이 운영한 시계점을 지키려다 실종된 60대 남성과 구조활동 교대를 해주려고 집을 나섰다가 정작 자신이 목숨을 잃은 경찰관의 사연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휴스턴 남부에서 시계점 '애큐-타임'을 운영하는 중국계 알렉산더 성(64)씨의 딸 알리시아(20)는 "사랑한다, 너희는 내 모든 것이야"라는 마지막 문자 이후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알리시아는 아버지가 분명히 폭우로 시계점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가게로 갔다가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아내의 만류에도 지난 29일 오후 4시께 경찰서로 출근하던 스티브 페레스(60) 경관은 홍수로 항상 가는 길이 막히자 다른 길로 돌아가려다가 물살에 휩쓸렸다.

동료들은 "진작 퇴직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 일을 사랑한 진정한 경찰관"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