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미국의 지난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12일(현지시간) 대선 회고록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를 출간했다.

클린턴은 이 책에서 워싱턴 주류와는 거리가 동떨어진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후 겪은 상처와 치유 과정을 담아냈다.

그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강렬한 삶의 2년 동안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클린턴은 그러나 초박빙의 막판 판세에 찬물을 끼얹은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를 결정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비롯해 치열한 당내 경선을 벌인 버니 샌더스, 그리고 트럼프를 향해선 비판과 원망을 원색적으로 쏟아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다.

클린턴은 이날 고향인 뉴욕을 시작으로 마치 대선 유세를 하듯 앞으로 미전역 15개 도시를 돌며 강연하는 '북 투어'에 들어갔다.

또 CBS, NPR 등 각종 방송과 라디오는 물론 '리파이너리29' 등 인터넷매체들과 잇따라 인터뷰를 하는 등 미디어 홍보전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나 클린턴이 '대선 패배 스토리'를 들고나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것에 중간선거를 1년여 앞둔 민주당은 달갑지 않은 시선을 드리우고 있다.

미 일간 시카고트리뷴은 서평에서 "클린턴이 대선 패배와 실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한다면 다른 문제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보수 성향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1%는 클린턴이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조사는 지난 10~11일 미 성인 1천 명(표본오차 ±3%)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클린턴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더는 공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책에서 "제가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다"고 적어, 적어도 대중의 시야 속에 남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다음은 회고록의 주요 내용이다.

◇ "코미 해명, 역겨웠다"

클린턴은 코미 FBI 당시 국장이 "지난해 7월 공개적으로 '찰과상'을 입힌 후 10월 28일에는 수사 재개라는 극적인 결정을 했다. 그러나 그는 트럼프와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코미는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인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7월 수사 종결 및 불기소 결정을 발표했다가 대선일을 불과 열흘여 앞두고 갑작스럽게 재수사를 발표해 판세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클린턴은 "만약 재수사 결정이 없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코미는 추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에 대해 '약간 역겹다'(mildly nauseous)고 말했는데, 그 말에 속이 메스꺼웠다"고 성토했다.

◇ "트럼프는 푸틴의 '트로이 목마'"

클린턴은 트럼프를 "미국과 전 세계의 분명한 당면 위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완벽한 트로이 목마"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또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는 "가끔은 '트럼프가 골프, 트위터, 케이블뉴스에 쓴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적었다.

또 트럼프가 지난해 10월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답변하는 클린턴 뒤를 왔다 갔다 하며 서성댄 것을 언급하면서도 그를 "크립(creep·변태처럼 징그러운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상처뿐인 승리, 샌더스

클린턴은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상원의원을 눌렀지만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그는 "샌더스의 공격에 따른 피해는 지속했다. 본선에서 진보진영을 하나로 묶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트럼프가 '거짓말쟁이 힐러리'(Crooked Hillary) 캠페인을 하는데 길을 열어줬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클린턴은 특히 샌더스가 스스로를 '진보 아이콘'으로 규정하고, 대신 자신에 대해선 시대와 동떨어진 '퇴물'로 규정지은 것에 분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샌더스가 마치 정치적 순수함을 독점한 것처럼 행동할 때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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