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불 덮고 사는 부부지만, 돈 쓸 땐 반반씩 따로따로"

[신풍속도]

30·40대 젊은 한인 부부들 사이에서 증가 추세
한국선'10쌍 중 2쌍'…한사람 돈관리 전통 깨져
'서로의 생활 배려'vs'결혼 의미 퇴색'찬반팽팽

# 미국 생활 3년째인 김소정(가명·35)씨는 LA 소재 유명 사립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직장인인 남편 정현오(가명·38)씨와 김씨는 알아주는 잉꼬 부부다. 하지만 돈과 관련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아파트 렌트비나 자동차 관련 비용 등을 비롯해 대외적 비용은 남편 정씨가 부담한다. 이에 반해 장보기와 육아 비용 등 생활에 필요한 경비는 아내 김씨의 몫이다. 경비 부담 비율은 남편과 아내 절반씩이다. 물론 은행 계좌도 따로따로다. 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각자 알아서 쓴다. 상대방을 위해 쓰든, 주변 친구나 후배에게 밥을 사든 상대방의 지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 원칙이다.
남편 정씨는 "아내 월급은 대략 알고는 있지만 캐묻지는 않는다"고 했다. "부부라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소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부부는 생활을 같이 하며 삶을 공유하는 사회적 관계다. 그 중 경제 공유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큰 몫을 차지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전적으로 돈관리를 하는 것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이 깨지고 있다. 소위 '더치페이 부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치페이 부부는 생활에 소요되는 비용을 각자 내는 부부를 말한다. 한마디로 한 이불을 덥지만 돈 쓸 때는 반반씩 부담하는 부부가 더치페이 부부다. 한국에선 이같은 더치페이 부부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

한국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부부 4884쌍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부부 10쌍 중 2쌍(18.2%)이 각각의 수입 중 일부를 합하고 나머지는 각자 관리하거나, 아예 수입을 각자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부부의 각자 돈 관리 비중은 평균 10쌍 중 3쌍(31.6%)으로 더 높았다.

여기에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과 함께 외벌이로서 생활이 쉽지 않은 미국 생활의 팍팍함이 더해지면서 30·40대 젊은 한인 부부를 중심으로 더치페이 부부의 수는 늘고 있는 추세다.

결혼 6개월째인 1.5세 부부 크리스틴 김(30)씨와 이주영(31)씨는 "결혼을 늦게 해서 그런지 두사람 모두 싱글일 때처럼 더치페이가 더 편하다"며 "오히려 지출 스트레스가 덜하고, 서로의 생활을 배려해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렇다고 서로 돈을 감추고, 감시하는 것은 아니고 큰 지출을 필요로 할 때는 남들처럼 같이 하기도 한다"며 주위 친구 부부들중에도 더치페이가 꽤 많다"고 전했다.

더치페이 부부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결혼관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이 경제적·가정적 자립이 불가능했던 남녀의 '필수 메뉴'였지만, 혼자 살아도 충분한 현대인들에게는 '선택 메뉴'가 된 셈이다. 부부 관계가서로 '종속'되는 관계에서 자립이 가능한 두 주체의 '조력' 관계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더치페이 부부를 결혼 의미의 퇴색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더치페이 부부는 개인주의 영향으로 결혼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의식에서 '계약 관계'로 변질시킨다는 것이 비판의 내용이다. 여기에 돈을 각자 관리하는 순간 부부간 심리적 거리도 멀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돈으로 부부 사이를 자로 재듯 재단할 수 있냐'는 비판과 '계산을 해서 서로 할일을 명확히 하자'는 더치페이 부부들의 대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