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재단,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원본 발견
광주 폭격계획 의혹 기록한 영문책자·미 국무부 기자회견 자료도 확보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담은 비밀보고서 원본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 소장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기념재단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러한 내용이 담긴 미국 UCLA대학 동아시아 도서관 자료 목록을 공개했다.

재단이 지난달 중순 미국 현지로 파견한 최용주 비상임연구원은 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 보관된 한국 민주화운동 및 인권, 통일 관련 1만2천여쪽 분량 자료 중 5·18 관련 문건 6천300여쪽을 확보했다.

최 연구원은 이 중에서 1984년 작성한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보고서 원본을 찾아내 분석 중이다.

보고서는 31쪽짜리 개조식 문서 묶음이다. 총 5부를 인쇄해 청와대로 전달한 2부를 제외하고, 행방이 묘연했던 나머지 3부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두환 씨가 대통령 재임 시절 정구호 전 경향신문 사장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보고서는 퇴임 후에도 이어지는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전씨 자신은 민정당 총재를 맡고 후임 대통령은 부총재직을 겸임토록 한다는 기본구상 아래 후계자 육성과 선정, 대통령 지도력 및 민정당 강화, 1988년까지 예상되는 정국 불안요인과 대책 등을 광범위하고 다뤘다.

보고서는 1988년 국회 5공비리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첨예한 이슈로 다뤄졌으나 지금까지 원본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최 연구원은 미국의 기독교 계열 인권운동단체인 KCCPJR(Korea Church Coalition for Peace, Justice, and Reunification)이 1995년 해산하면서 보고서를 다른 5·18 문건과 함께 UCLA대학에 기증했다고 입수 경위를 설명했다.

5·18재단은 5·18 관련 문건을 국내로 들여와 분석하고자 지난해부터 UCLA대학과 업무협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으나 연구 목적을 위한 열람만 가능한 상태라 보고서 실물을 공개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재단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투기 폭격까지 준비했다는 의혹이 담긴 UCLA 도서관 자료 내용도 함께 공개했다.

5·18재단은 도서관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광주를 폭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광주 체류 선교사들이 반대해서 철회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영문책자로 '톰 설리번'이라는 일본 도쿄 주재 미국 기자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서 다각도로 확인해야 한다"며 "다만, 당시에 이러한 소문이 미국 현지에서도 회자됐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이번에 확보한 1980년 5월 23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 기자 브리핑 질의응답 자료를 보면 미국 측 기자들도 소문 진위를 확인하고자 호딩 카터 당시 대변인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미 국무부 측 답변으로는 "호딩 카터가 이 질문에 대해 '국방부 소관'이라며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5·18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투기에 공대지 폭탄(공중에서 지상으로 투하하는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을 대기했다는 의혹은 올해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37년 만에 최초로 알려졌다.

광주에 전투기 폭격까지 준비한 것이 사실이라면 계엄군을 투입해 광주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활동 중이다.

재단은 1982년 전두환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자경찰봉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시위 진압 및 고문용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국무부 반대에 부딪힌 일화도 UCLA 도서관 자료를 통해 소개했다.

최 연구원은 "기밀해제 된 CIA 문건 등을 종합해 5·18 당시 미국 정부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필요를 UCLA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