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킬러, 영국 국방장관-소련 KGB요원과 동시에 관계 '양다리 스캔들' 주역

[커버스토리]

60년대 보수당 내각 몰락으로 이어진 정치 스캔들
19세 때 런던 소호 댄서,고위층 상대 콜걸로 일해
전쟁영웅 유부남 프러퓨모 국방장관과 관계 맺고
주영 소련대사관 해군무관겸 정보원과'왔다갔다'


누드모델 출신으로 냉전 시대 영국과 구소련의 고위 관료와 모두 관계를 맺어 1960년대 중반 영국 보수당 내각의 몰락을 초래했던 크리스틴 킬러(Keeler)가 75세로 4일 사망했다. 킬러는 지난 몇달 간 폐 질환을 앓아왔다.

킬러는 런던 소호의 카바레 댄서로 일하던 중 명사들의 사교모임에서 고위 관료나 엘리트층과 잠자리를 주선하던 스티븐 워드의 눈에 띄어 콜걸이 됐다. 그런 모임에서 1961년 당시 영국 국방장관이던 존 프러퓨모를 만났다. 옥스퍼드대를 나온 프러퓨모는 2차대전때 이탈리아 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전 등에서 공을 세워 전쟁 중 대영제국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50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여러 부처 각료를 거쳐 60년 국방장관이 됐다. 당시 영화배우 발레리 홉슨과 결혼한 유부남이었던 그는 19살이던 킬러를 만나 몇 주간 성적인 교제를 나눴다.

킬러는 동시에 주영국 소련대사관 해군 무관이자 정보 요원이었던 예프게니 이바노프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무렵에도 소문이 있었지만 정치인의 사생활에 비교적 관대한 영국 분위기 때문에 공식으로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

하지만 62년 말 킬러를 스토킹하던 남성이 총격 사건을 벌이면서 수사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킬러의 남자에 소련 정보요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져 '프러퓨모 스캔들'로 번졌다.

63년 의회에서 노동당 의원이 냉전 상황에서 기밀 유출 의혹을 제기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킬러에게는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프러퓨모는 처음 킬러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결국 위증으로 각료 자리와 의원직에서 모두 사퇴했다. 64년 선거에서 당시 해럴드 맥밀런 보수당 내각이 노동당에 패한 데는 이 스캔들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돼 있다.

킬러는 재판과정에서 위증과 부정행위로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몇 개월 간 수감됐다. 1986년 킬러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19살 어린 여자애였을 뿐"이라며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만두고 엄마에게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했다.

아일랜드에 사는 아들 플랫은 "어머니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 가족 모두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며 "다소 비극적인 삶이었지만 떠나는 어머니 주위엔 가족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러퓨모는 사임 후 40년 가량 런던 동부 슬럼가 자선단체의 무급 봉사자로 지냈다. BBC 방송은 60년대 정계를 뒤흔들었던 당시 스캔들을 재조명하는 시리즈물을 내년 중 제작할 예정이다.

영국 국방장관이던 존 프러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