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서 "음악 시끄럽다"며 13층 외벽작업자 밧줄 끊어
가장 잃은 유가족 트라우마에 시달려…범인에 무기징역 선고
국외에서도 유가족에 온정…"독수리 5남매 바르게 키울게요"

(양산=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아빠는 정말 하늘나라로 갔어요?"

30개월 된 막내딸과 7살 넷째 딸은 아직도 수시로 아빠를 찾는다.

너무나 갑자기 떠나버린 아빠. 아이들은 정말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고교 2학년인 큰딸은 얼마 전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병원에서 나흘간 치료를 받고 퇴원한 큰딸의 병명은 '극심한 흉통'이었다.

일곱 식구의 가장이었던 김모(46)씨가 갑자기 떠난 지 6개월.

그동안 사무치도록 아빠를 그리워하며 가슴 속으로 삭이고 삭이다 결국 병이 난 것이다.

생전 매 한번 들지 않고 고함 한번 제대로 지르지 않으며 자상했던 아빠가 떠난 빈자리는 그만큼 컸고 상처는 깊었다.

남편을 졸지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아내 권모씨는 남편이 신던 신발을 아직 치우지 못했다.

사랑했던 남편을 쉽게 보낼 수 없어서다.

권씨는 아이들이 학교로, 유치원으로 간 뒤에는 막내를 안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힘들어도 애들을 보고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아이들 외할아버지(66)는 아들 같은 사위가 떠난 뒤 주말마다 손주들을 데리고 김해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온다.

그는 "이렇게라도 바람을 쐬고 와야 아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아직도 아빠를 너무 그리워해 가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칠순 노모는 처자식과 어머니를 위해 밧줄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을 친다.

일곱 식구만 쳐다보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왔던 김씨는 지난 6월8일 오전 8시13분께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 옥상 근처 외벽에서 밧줄에 의지한 채 작업에 열중했다.

김씨는 평소처럼 자신의 휴대전화로 음악을 켜놓고 일했다.

고층 외벽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소형 라디오나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다.

김씨가 처음부터 위험한 고층 외벽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원래 트럭을 몰고 다니며 과일 노점상을 했다.

하지만 과일 장사로 가족들 생계를 이어가기엔 너무나 힘겨웠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일이 고층 건물 외벽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청소와 도색 작업 등을 하는 것이었다.

겁나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과일 장사보다 훨씬 벌이가 나았다. 김씨는 이날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 서모(41)씨가 김씨가 켜놓은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홧김에 집에 있던 커터칼을 든 채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13층 높이에서 추락한 김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13층에서 바닥까지 까닭도 모른 채 추락하던 김씨는 아내와 고교 2학년생부터 생후 27개월까지 5남매, 칠순 노모까지 일곱 식구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서씨가 자른 밧줄은 일곱 식구의 생명줄이었다.

범행 후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던 서씨는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붙잡혔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안타까움과 공분이 일었다.

절망과 실의에 빠진 일곱 식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보도를 통해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양산에선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평범한 주민들이 모인 온라인커뮤니티가 모금을 주도했다.

모금운동은 전국으로 번졌고, 급기야 국외로까지 퍼져나갔다.

지난 6월20일 양산경찰서에서 열린 피해자 가족을 위한 성금 전달식에서 김씨의 부인은 "우리 독수리 5남매를 씩씩하고 바르게 잘 키우는 것으로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울먹였다.

국민은 가장을 잃은 일곱 식구에 위로를 보내며, 밧줄을 자른 살인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요구했다.

유가족들도 서씨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수호천사처럼 자신들을 지켜준 아빠를 숨지게 한 살인범을 다시는 만나기 싫었다.

재판부에 서씨를 엄벌해달라는 탄원서가 잇따랐다.

이달 15일 재판부는 김씨를 숨지게 한 살인범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살인범은 뒤늦게 재판부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으나 검찰은 "자신의 처벌을 줄이고자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서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는 늦은 밤이나 새벽도 아니었고 피해자가 튼 음악 소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가장을 잃고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졌으며, 그 충격과 아픔은 평생 계속될 수 있다"면서 "피고인은 뒤늦게 반성했으나, 피해자 가족들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부 선고 순간, 김씨 유가족들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안도와 한숨의 눈물이었다.

고인의 장인 권씨는 "만약 살인범이 항소한다면 대법원까지 탄원서를 넣을 것"이라며 "너무 상처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깊은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준 많은 국민께 정말 감사하고 큰절을 올리고 싶다"며 "살아있는 동안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choi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