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나라로 스스로 돌아왔지만, 결국은 '마음의 병'으로...

[이슈진단]

8살때 노르웨이로 입양...한국말도 못하면서 무작정 돌아가

5년동안 헤맸지만 부모흔적도 새로운 인연도 끝내 못 찾아

태어난 나라-살고있는 나라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삶 마감

대한민국의 눈과 귀가 모두 충북 제천으로 쏠렸던 21일, 경남 김해에서 노르웨이 국적의 한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숨이 끊어진 뒤 약 열흘 지난 뒤였다.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시원 관리인이었다. 사망자 Y씨(45)는 1980년, 여덟 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다.

그는 겉모습만 한국인이었다. 한국말을 못했고, 한국에 연고도 없었다. 그런 그가 2013년 무작정 한국을 찾아온 이유는 오직 친부모를 찾겠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국을 떠난 지 33년 만이었다. 그러나 친부모를 찾는 '기적'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낸 5년 동안 얻은 것이라곤 부모의 흔적도, 새로운 인연도 아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Y씨가 생전 마음의 병을 앓았다고 설명했다. 모국에서 5년 동안 헤매며 얻은 것은 이뿐이었다. 죽기 전 남긴 유서도 없었고, 그 대신 술병만 차가운 원룸 바닥을 채웠다. Y 씨는 그를 떠나보낸 나라로 스스로 돌아와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뿐인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Y씨 소식은 5년 전 이맘때 서울동부지법 재판정에 섰던 피고인 강용문 씨(41)의 사연과 닮아있다. 미국 이름은 트래비스 마이클 더들리, 강씨 역시 1983년 6세 때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다.

강씨는 한국에서 무거운 죄를 저질렀다.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 화장실에서 일본인을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학대와 폭력을 일삼았던 양부모가 남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지만 실패했고, 결국 술과 도박에 빠졌다. 그는 당시 최후변론에서 "양부모는 음식에 술을 탔고, 불붙인 성냥을 쥐게 하는 등 나를 학대했다. 한국에서 입양아를 돕는 모임에도 참석하고 적응하려 애썼지만 말이 안 통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기억 탓에 난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찾아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거듭된 입양과 학대 속에서 자란 점을 들어 형량을 줄였다. 징역 3년 6개월 형. 그리고 지난해 5월 강 씨는 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사랑과 보살핌 대신 학대와 폭력을 준 양부모, 함께 미국으로 입양된 두 동생은 마약과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 중 상당수는 태어난 나라, 살고 있는 나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한국에서 출생해 해외에 입양됐지만 현지 국적을 얻지 못한 입양인만 지금까지 2만6000여명(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전 해외 입양된 16만5305명 중)에 달한다. 100명 중 15명의 아이가 무국적자가 됐다니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매년 300∼400명의 아이가 마구잡이식으로 해외로 보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