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공조 의식하며 한일 관계 파국 피하는 관리 모드 취할 가능성
한국 정부 '재협상' 등 판단 내놓는 시점, 한일관계 분수령될 전망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이면합의'가 포함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보고서가 27일 발표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관심이 모인다.

전날 관련 보고서 내용을 통보받은 일본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우선 그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국 측의 보고서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 측의 이번 보고서가 2015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를 면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재협상 혹은 협상 파기 등 한국 정부의 차후 대책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즉각적으로 구체적인 강경 대응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이면합의를 포함해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의 협상 경과가 낱낱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일본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14년 일본 아베 내각이 위안부 제도에 일본군과 관헌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1993년)를 검증하면서 한일 간 외교협의 경과를 상세히 공개해 한국 측 입장을 어렵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박근혜-아베 정부 간 물밑 정치적 협상의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아베 내각은 그와 관련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측의 보고서 발표가 이뤄지기 전인 이날 오전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한국 정부에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끈질기게 요구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재작년 합의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에 대해 한일 양국 간에 확인한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면 합의를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합의에서 일본 측에 유리한 부분을 부각시키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측은 그러면서도 즉각적인 반발을 삼가는 기색이다.

이런 가운데 아베 내각이 앞으로도 우익 유권자들의 구미에 맞는 강경 발언으로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아베 내각은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내년으로 미루는 가하면 아베 총리의 평창 동계올림픽 방문 요청에 답변을 유보하는 식으로, 한국 측에 위안부 합의 관련해 '양보'를 압박해왔다는 점에서 차후 한일 관계에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올해 초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 때처럼 일본 정부가 초강경 대응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당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의 소환을 비롯해 한일통화스와프 협상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부산영사관 직원의 부산시 관련 행사 참석 보류 등 4가지 항목의 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나가미네 대사 등은 역대 최장인 85일이나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며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바 있으나, 결국 일본 측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스스로 초강경 대응 조치들을 거두어야 했다.

더욱이 한일관계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1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 일본 측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핵·미사일 도발을 반복하는 북한에 대한 한일 공조의 필요성이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22 총선 때 북한 문제를 '국난'으로 제시하며 북풍(北風) 몰이를 함으로써 승리했는데, 이제 와서 한일 공조를 흐트러트릴 만큼 강공을 펼친다면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시 강경책을 쓴다면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양국 간 '올림픽 외교'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 수도 있다는 것도 아베 정권에 부담이다.

아베 정권이 10월 총선 승리 이후 주춤한 지지율 회복을 위해 우익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강경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지만,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간다면 득보다는 실이 더 클 수 있는 만큼 강경책이 쉬운 선택지는 아닐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한국측의 위안부 TF 보고서 발표에도,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아베 총리는 지난 19일 강경화 외교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곤란한 문제를 적절히 관리해 나가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양국 관계에서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정부가 추후 위안부 합의의 변경과 관련한 입장을 정할 때가 한일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靜岡) 현립대(국제관계학) 교수는 "보고서가 박근혜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만, 한국 정부에 협상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제안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보고서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시킬지 판단한 뒤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