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뉴·스]

사상 최초 메이저 테니스대회 4강 진출 투혼'정현 신드롬'
취업·결혼 등 미래 삶 불투명 의기소침 20·30세대 큰 울림
김연아 금메달, 월드컵 4강 못지않은 업적 새로운'국민 영웅'

한국 테니스계의 떠오르는 별 정현(22·세계5위)이 한국과 한인들의 마음을 강타하고 있다. 정현이 2018 호주오픈에서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자 세대는 물론 지리적 거리감도 불문하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환호하고 있다.

정현이라는 한 테니스 선수에 우리 모두가 열광하고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신체적 약점과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하고 새역사를 만들어가는 정현을 보고 젊은 세대들은 대리만족을 넘어 동일시하는 한편, 기성세대는 과거 박세리와 박찬호를 보면서 팍팍했던 삶을 견뎌냈던 추억과 함께 점점 사라져가는 투혼을 다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에 가장 열광한 건 20·30세대다. 같은 세대인 정현의 승리를 보며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 세계 강호들을 만나도 기죽지 않는 정현의 자신감에 20·30세대는 박수를 보냈다. 정현이 16강에서 만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함께 세계 테니스 왕좌를 다퉜던 스타 플레이어다. 이름값에 기가 눌릴 법도 한데, 16강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내고 자기 플레이를 펼쳐 거둔 성과다.

취업·결혼 등 미래 삶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불안해하는 젊은 새대들에게 정현의 자신감은 큰 울림이 됐다.

가족 부양·퇴사·은퇴 등 팍팍한 삶에 지쳐있는 기성 세대들은 좌절보다 여유와 웃음을 보이며 정정당당히 승리를 해나가는 정현에게서 과거 데자뷔를 본다. 한국 IMF 사태와 LA폭동 등 어려운 시절 양말을 벗어 던지고 연못에 들어가는 투혼을 보였던 박세리와 최고라하는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강타자들을 강속구로 제압했던 박찬호에 열광했던 기성 세대들에게 정현은 2018년의 박세리와 박찬호가 된 셈이다.

여기에 승리 후 인터뷰 때마다 정현이 날린 능숙한 영어로 좌중을 사로잡는 멘트는 기성 세대들에게 삶의 여유를 보여준다. 8강전 마지막 게임에서 40-0으로 리드한 뒤 연거푸 점수를 내준 데 대해 정현은 "40-0이 되고나자 이기면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하다보니 점수를 내줬다"고 했다. 위기 상황에서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정현의 자세에서 기성 세대들은 열광했다.

어디 이뿐인가.

유력한 4강 대결 상대로 꼽히는 로저 페더러를 염두에 두고 '4강 상대로 누구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누구와 맞붙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정현의 대답에서 기성 세대는 투혼을 보았다.

약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끈질긴 승부로 승리를 따내는 정현에게 젊은 시절 간직했던 투혼과 도전의 정신을 떠올리며 기성 세대는 행복해하고 있는 것이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한·일 월드컵 4강에 비견할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룬 정현, 그래서 그를 '국민 영웅'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정현은 26일 최강 로저 페더러(스위스·세계2위)와 결승 티켓을 놓고 다툰다. 이기기를 바라지만 져도 좋다. 다시한번 그의 투혼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