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적폐 판사''쓰레기'로 몰린 정형식 재판장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
선고 후 쏟아진 비판 알아…사회가 성숙하는 과정"
'파면하라'국민청원 쇄도,'소신 판사'지지 댓글도

서울고법 형사13부 정형식(사진)재판장은 지난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어준 뒤 인터넷에서 '적폐 판사'로 몰리고 있다.

6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그를 파면하라는 글이 500여 건 올라왔다. 서울고법 정문에 '개 사료'를 뿌린 사람도 있었다. 그는 "그런 비난들을 알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최근 일부 판사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 분위기도 "결국은 사회가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친인척 관계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것까지 자세하게 거론하는 건 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며 언론 보도에 친인척 관계가 언급된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판결에 대해선 "법리(法理)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1심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는 뇌물죄의 전제가 된 묵시적 청탁, 그 대가에 해당하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뇌물의 상당 부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이 부회장의 석방 여부였다"고 했다. 그는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금액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특검이 기소한 뇌물 액수 433억원에 비하면 작지만 그 자체로 보면 거액이다.

그 역시 이 부분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전체 구도가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요구형 뇌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했다.

그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결정은 실형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고민 끝에 사건의 성격을 고려해 석방을 결정했다"고 했다.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건넨 금액의 '뇌물 성격'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고 했다.

▣정청래 "법을 살인한 법관"

선고가 난 직후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6일 오후 9시 현재 700여 건의 청원 글이 올라온 상태다.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과 정 부장판사를 특별 감사해야 한다는 청원 글에는 13만 명이 참여했다.

대다수 글에는 정 부장판사에 대한 욕설이나 지나친 비난이 담겨 판사에 대한 '신상털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원 글들은 정 부장판사를 '반역자''매국노''쓰레기'라고 지칭했다.

또 정 부장판사가 삼성그룹에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 "이게 판사냐?"라며 정 부장판사의 사진을 다수 올렸다.

또 "법관이 법을 살인한 거다. 법복을 벗고 식칼을 들어라"라고 썼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라디오에서 "삼성과 법관 개인의 유착, '삼법 유착'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정 부장판사는 소신 있는 판사다""기골 있는 판사들이 자꾸 옷 벗고 나가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정형식 재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