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메신저'로 남북정상 간접대화 하는 모양새
문 대통령, '비핵화 촉구' 메시지 수위 고심할 듯
김여정, 남북 정상회담 타진 가능성도 있어…靑은 '신중론'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10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오찬을 함께하기로 하면서 이제 모든 관심은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을지에 쏠린다.

문 대통령과 대표단의 면담에서 오가는 메시지의 내용과 수준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한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와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특히 이목이 쏠리는 것은 문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만남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8일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견 사실을 전하면서 어느 인사가 참석할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이 빠질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김여정 제1부부장이 북한의 김 씨 일가를 뜻하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일원으로는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는 데다 현재 최고권력의 실세 측근으로 꼽히는 만큼 친서 형태 등으로 김 위원장이 전하는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낼 경우 정확히 어떤 내용을 보낼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지난해까지 잇따른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으로 긴장수위를 높였던 양상에서 벗어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김여정 제1부부장을 대표단 일원으로 파견하는 것을 보면 남북대화 의지를 담은 내용이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가능하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북한이 이른바 '건군절' 열병식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생중계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지도록 북한이 고민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김여정 제1부부장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떠한 내용의 메시지를 전할지도 관심사다.

일단은 북한의 참가를 이끌어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는 동시에 닫혔던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구상이 실제로 그려진 이상 북한의 대화 의지가 확인된다면 그 자체를 비중 있게 평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건은 남북관계에서 문 대통령이 최종적인 목표로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에 촉구할 수 있는 행동의 '수위'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면담이 성사됐을 때 비핵화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이번 만남이) 첫발을 떼는 것인데 비핵화 문제는 어떻게 보면 가장 끝에 있는 문제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북한의 실세를 만난다 하더라도 직접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게 비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여론이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때마다 강경한 어휘를 사용해 이를 비판하며 핵무장 의지를 강조했던 것을 고려하면 성급한 접근은 점점 무르익는 남북 대화 분위기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직접 '비핵화에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남북 대화의 폭을 넓혀가자는 제안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문 대통령이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방한한 한정(韓正)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도 올림픽 후에도 북한과의 대화가 지속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만난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메시지가 오갈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사에서부터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말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만큼 남북 해빙 무드를 바탕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자 하는 뜻을 간접적으로 타진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남북 대화 구상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김여정 부부장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전할 수 있다는 분석에 아주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와대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가 오갈 가능성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8일 기자들을 만나 '접견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힐 수도 있는가'라는 물음에 "너무 이른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 정부가 답방 차원의 방북을 검토할 수 있나'라는 물음에 "좀 성급하다"고 답한 바 있다.

실무적인 선에서의 답방 가능성을 미지수로 남겨둔 것은 남북 대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정상회담이야말로 북한의 반응을 보면서 차분히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