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TF 소속 남북 태권도 시범단, 서울시청 다목적홀서 공연
南이 든 송판 北이 깨뜨리며 손 맞잡아…리용선 "눈물이 난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이태수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남북한 태권도가 서울에서 다시 뭉쳤다.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은 12일 오후 2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합동 시범공연을 펼쳤다.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 식전행사와 10일 속초 공연에 이은 세 번째 공연이다.

태권도는 남북 모두에서 국기(國技)다. 뿌리는 하나지만 분단 70년간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 태권도 종목의 국제경기연맹 역시 한국이 이끄는 WT와 북한이 주도하는 ITF로 나뉘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남북의 태권도는 품새부터 기술, 경기 운영방식, 규칙 등이 달라졌다. WT의 태권도는 올림픽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며 변화를 거듭했지만, ITF 태권도는 '무도 태권도'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이날 공연도 각자 특색을 살려 북한은 손기술과 호신술 위주의 시범공연을 선보였고, 우리나라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송판을 깨뜨리는 화려한 발동작과 예술적 요소를 가미한 공연을 펼쳤다.

공연의 시작은 남한이 이끄는 WT 시범단이 열었다. 때론 웅장하고 때론 경쾌한 음악을 시종 바탕에 깐 채 스토리가 있는 공연을 꾸몄다. 록 버전으로 편곡한 '아리랑'에 맞춘 품새를 선보이다가 3m 높이에 매단 송판을 깨뜨리니 '하나의 세계, 하나의 태권도(One World, One Taekwondo)'라는 현수막 메시지가 내려왔다.

북한 ITF 시범단은 박력 있는 동작과 격파로 관중들을 들었다 놓았다. 10cm짜리 두꺼운 송판을 발차기로 깨고, 8cm 송판을 손날로 격파하거나 맨몸으로 각목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유난히 우렁찬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북한 시범단에선 여성 단원 4명의 활약이 돋보였다. 뒤에서 붙잡는 남성들을 업어 치고 메치다 공중 날아 차기로 완벽히 제압했다. 송판 10개를 연속으로 깨뜨리는 '신공'도 선보였다. 북한 시범단은 '조국통일'이라는 기합을 넣으며 남북의 하나 됨을 염원했다.

이어진 남북 합동공연에선 최동성 WT 시범단 감독이 잡은 송판을 송남호 ITF 시범단 감독이 격파하며 손을 맞잡았다.

서울시와 통일부, 세계태권도연맹은 이날 시범공연에 개성공단 관련 기업, 서울시 환경미화원, 장애인, 복지시설 아동, 태권도 꿈나무 등 250여명을 초청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 조정원 WT 총재, 리용선 ITF 총재 등도 공연을 지켜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6월 무주에서 합동공연을 한 남북 태권도는 어려운 시절에도 평창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며 "전국체전 100주년 행사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개막식은 서울에서, 폐막식은 평양에서 열리기를 바란다"며 "마라톤경기가 북측에서 출발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공연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 북한 시범단의 공연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남과 북이 자주 만나지 않으면 '왜 통일해야 하는가'하는 다음 세대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며 "한 세대 건너뛰면 의문 속에 점점 통일의 길이 멀어질 수 있기에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시범단은 하루 쉬었다가 오는 14일 MBC 상암홀에서 공연을 펼친 뒤 15일 육로로 돌아간다.

남북 태권도는 4개월 뒤인 오는 6월 바티칸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올림픽 개회식에 사상 처음으로 초청받은 교황청 대표단이 6월 바티칸에서의 남북한 합동 시범공연을 제안했다.

리용선 ITF 총재는 공연이 끝난 뒤 취재진을 향해 "눈물이 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인데 이뤘다고 생각하니, (공연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난다"며 "태권도 뿌리는 하나다. 마음만 그저 가까우면 순간에 되는 거다. 이때까지 마음이 멀어있었지만, 이제 가까워졌으니 '그날'을 빨리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총재는 공연 후 북한 시범단에게 "여러분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조정원 WT 총재는 "양쪽의 경기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양쪽에서 수련한 태권도인들이 교차해서 양쪽 대회에 같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WT 시범단 최가은(25) 선수는 "러시아 첼랴빈스크와 무주 공연에 이어 이번이 북한 시범단과 5번째 합동공연"이라며 "매번 만날 때마다 (북한 시범단이) 더 난이도 있는 기술을 가져온다. 따로 연락하기는 어렵지만 얼굴을 익힌 선수들도 생겼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식사 자리에서 보면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남북 태권도 합동공연을 관람한 시민들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한국체대 화랑태권도에서 동료 원생들과 함께 온 오재호(13)군은 멋들어진 도복을 갖춰 입고 공연을 관람했다.

오 군은 "남과 북이 같이 태권도 공연을 펼친다는 점이 감동적으로 보였다"며 "북한 시범단이 호신술을 할 때 위력적으로 보여 멋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안양대 장용철(60) 교수는 "북한 태권도가 '무술'에 가까운 느낌을 줬다면 우리 태권도는 기교가 빼어났다는 차이점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두 가지 태권도가 약간 다른 것 같다"며 "두 가지 차이를 하나로 묶어 공동으로 같이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네 자녀와 함께 서울시청을 찾은 한 '다둥이 어머니'는 "남북이 함께 공연하는 기회가 흔치가 않은 만큼 이번 자리가 뜻깊은 것 같다. 다만 북한 측 사회자 말이 말투가 달라 잘 알아듣기 힘들기도 했다"며 "아이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