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등진 배우 조민기(본명 조병기)의 빈소엔 유족들의 슬픔과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이와 함께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의 열기도 조금 주춤하는 모양새다.

서울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4시 5분쯤 조민기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 A 아파트 지하주차장 옆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인의 119 신고로 그는 즉시 건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발견 당시 이미 심정지 및 호흡정지로 사망한 상태였다.

사면초가에 빠진 조민기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사과문은 거짓이 됐고, "덕분에 이제라도 저의 교만과 그릇됨을 뉘우칠 수 있게 되어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그의 깨달음은 공허한 외침이 됐다. 남겨진 가족과 성폭력을 폭로했던 피해자들이 그의 죽음의 무게를 견뎌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조민기가 사망함에 따라 형사 입건을 앞두고 있던 이번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된다. 침통한 분위기 속 그의 필모그래피는 재주목받고, 미투 운동의 열기는 소강상태가 됐다. 6일 MBC 'PD수첩'의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을 계기로 '미투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분위기는 한층 수그러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물론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안타까운 죽음의 충격은 크다. 조민기의 죽음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며 피해자들을 되레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겪은 개개인이 직접 주체가 돼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이다. 최근 문화계, 정치계 등 모든 분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년간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많은 이들에게 생생히 알려졌다.

물론 미투 운동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가해자로 오해받는 피해자도 생겨나는 등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는가 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년, 수십 년간 고통 속에 살다가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는 건 그들에겐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이 될 수 있다.

조민기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이번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잘못한 건 없다. 조민기가 성추문에 휩싸인 이후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느꼈던 정신적 고통은 매우 컸을 테지만, 피해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숨죽이며 겪었을 고통이 절대 그보다 작다고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순 없다.

오랫동안 권력형 성폭력이 지속돼왔고, 성폭력에 관대했던 우리 사회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미투와 피해자가 존재할 것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어렵게 용기를 낸 미투 운동의 본질이 이대로 퇴색돼서는 안되며, 조용히 사라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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