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009년 8월 단역 여배우 자매가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 재주목 받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3일 올라온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 제발 재조사를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7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관련 보도 내용을 첨부하며 "여전히 가해자들과 부실 수사를 한 사람들은 잘 산다"라며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미투'의 여파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도 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5일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탐정 손수호' 코너에서는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사건은 2004년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원생 A씨와 그의 여동생 B씨가 6일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날 방송에서 손수호 변호사는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의 가늠자라며 사건 재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닐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고, 행동도 모범적이었던 A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서 쉬던 중 유명 가수 백댄서로 활동하던 여동생 B씨의 권유로 드라마 단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7월 어느 날 A씨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경남 하동에서 진행된 드라마 촬영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단역배우 들을 관리하는 반장의 보조 역할을 하는 보조 반장 이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이씨의 성추행은 한 달 뒤 성폭행으로 이어졌고, 이씨는 9월까지 두 달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 같은 파렴치한 범행을 저질른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7월 드라마 촬영을 위해 경남 하동으로 간 뒤 3개월간의 보조출연 활동 이후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돌연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죽여야 돼"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난폭한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줬다.

결국 A씨는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그가 기획사 보조반장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정황이 드러났다. 보조반장 이씨는 A씨에게 성추행 끝에 성폭행까지 했고, 9월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이씨는 다른 반장들에게도 범죄를 종용했고, A씨는 11월까지 촬영지 인근 모텔, 차량 등에서 다른 보조반장, 캐스팅 담당자 등에게 여러 차례 강간과 성추행을 당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A씨에게 '주위에 이 사실을 다 알려 사회생활 못 하게 하겠다', '동생과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 '동생을 팔아넘기겠다' 등으로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가해자는 A씨에게 직접 전화해 가족들을 죽이겠다며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항의하는 모친을 때리기까지 했지만 검찰에서는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경찰 역시 가해자들과 A씨를 한 자리에 앉혀 조사를 받게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A씨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달에 한번 꼴로 가해자들과 대질심문을 해야했고, 이 과정에서 2차 피해까지 당했다.

대질조사에서 가해자들은 A씨의 말을 비웃거나 반박했고, 그 자리에서 A씨와의 성행위나 자세를 흉내내기까지 했다. 경찰은 A씨를 조사하면서 가해자들의 성기 모양을 그림으로 정확히 그리라는 요구까지 했다.

결국 A씨는 고소한지 1년 7개월 만에 고소를 취하했다. 그리고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서 A씨는 "나는 그들의 노리개였다. 나를 건드렸다. 더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적었다.

A씨가 사망한지 6일만에 동생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은 유서에서 "언니가 보고 싶다. 언니가 보고 싶어서 먼저 간다"며 "엄마는 복수하고 와라. 엄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평소 지병을 앓던 아버지도 동생이 사망한지 2달 이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어머니 홀로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했지만 소멸시효 때문에 패소했다.

어머니는 가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으나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A씨 모녀의 고통을 보면서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은 "이미 검사 지휘를 받아서 다 마무리한 사건"이라고 답하는데 그쳤고, 가해자들 역시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문제가 없다', '다 끝난 일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해자 대부분은 현재까지도 비슷한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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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