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청소년 네티즌들의 온라인상 언어문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심각한 한글 파괴라는 우려까지 나온 지 꽤 되었다. 특히 줄임말들이 그렇다. 잘 알다시피 '훈남'이나 '엄친아'등은 이제 아주 표준말인 듯 착각할 정도로 되었다. 그러나 전혀 알 수 없는 단어는 물론 그 단어조합들이 영어 일본어를 막론하고 뒤엉켜있어 외계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예를 들어 '갈비'는 '갈수록 비호감'이란 말이고 '생선'은 '생일선물'의 준말이라 하는데 그래도 이건 애교라도 있고 나은 편이다. 신조어 '핵노잼'은 재미없다는 말이고 '낫닝겐''은 사람이 아닌 듯 능력이 뛰어난 것을 말하는 영어와 일본어의 합성이다. 웬만한 노력 없인 젊은 시대에 발맞추어 가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줄임말은 옛날에도 있었다. 옛적에 학교칠판 한구석은 주번이나 반장이 분필로 여러 알림을 써 놓는 일종의 메모판이기도 했다. 즉 첫 시간 영어로 시작해서 마지막 미술까지 과목의 첫 글자를 세로로 한줄 곱게 써 놓은 '영수물국상화음미'같은 시간표도 있었고, 떠든 아이들의 리스트도 있었다. 헌데 어느 날 대형사고가 터졌다. 누군가가 칠판에 '생과부 교미 사실'이라고 써놓았는데 하필 그날 첫 시간 들어온 교사가 생~과부 여선생님이었다는데 심한 모욕감을 느껴 범인 색출에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드디어 잡힌 범인이 교무실로 끌려가 생활지도부로 넘겨지고 난리를 치고 혼쭐을 내어도 여선생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헌데 실상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오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시간표가 공교롭게도 '생물, 과학, 부기, 교련, 미술, 사회, 실과'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응용미술학과를 '응미과'로 줄여 말하듯이 교육미술학과 학생에게 '교미과 전공하세요?'묻는다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겠나? (다행히 실제로 이런 과는 없다.) 한번은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의대 여학생들이 대화를 하는데 이게 영 주위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한 게 아니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너 생리했니?''아니, 아직 인데.''얘. 나는 이번에 아주 혼났어. 얼마나 양이 많은지.''그랬구나. 나도 곧 시작하려고 하는데 걱정이야.''매번 고역이야...' 듣다못해 옆 신사 분께서 나무라시자 이 학생들 별꼴이란 듯 한번 쳐다보고는 차에서 내려버리더란다. 사실 이들의 대화는 '생리학'시험에 관한 얘기였는데 '학'자를 떼고 주로 병리니 생리니 해부니 하고 줄여서 한 것뿐이었다. 생리학 시험 분량이 많아 무척 고생한다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줄임말은 재미도 있고 편리하겠지만 이렇듯 오해의 소지도 다분한데 젊은 동아리들끼리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여 구세대와 차별을 갖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득 이런 고전 하나가 떠오른다. 한 식당에 남녀 한 쌍이 들어갔다. 종업원이 와서 무얼 드시겠냐고 주문하니 남자 분께서 곰탕을 시켰다. 보통이요? 곱빼기요? 하고 되물으니 보통으로 해 달라고 했다. 이어 여자분 차례가 되어 갈비탕 보통을 부탁했더니, 이 종업원 주방에 대고 큰소리로 외치더란다. '2호실에 곰보하나, 갈보하나 있어요!' 에그머니나. 음식하나라도 잘못 주문했다간 해괴하게 망가진 체면이 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