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 'The spirit is good, but the flesh is weak.'(정신은 강하나 육신이 약하구나). 어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를 보고는 '아하! 술은 좋은데 안주가 시원찮구나!'했다나? 술을 영어권에서는 spirit이라고도 하지만 '정신'이란 뜻도 있다. 헌데 한자문화권에서도 술(酒精)과 정신(精神)에 같은 글자(精)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술을 단순한 음식이라기 보단 우리의 영육과 밀접하게 하나로 본 것 같다. 주선 이태백은 달을 너무 좋아해 달밤에 배를 타고 술을 벗 삼아 시흥(詩興)에 젖어 강물에 비쳐진 달을 잡으려다가 비록 장강에 빠져 죽긴 했어도 술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친구이자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우리 선조들은 술도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가려 마시라 했다. 봄 술은 정원에 앉아 은은하게 마시고, 여름엔 높은 정자 같은 곳에 올라 시원하게 마시라했다. 그리고 가을 술은 바다나 강을 멀리 바라보면서 마시고 겨울엔 하얀 눈과 함께 하라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친하되 스승 모시듯 구별을 두고 예를 갖춰 음미하란 뜻일 게다. '물은 신이 만들고 술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 있을 땐 물속에 잠겨 있던 우리가 죽을 땐 술을 같이 묻어 주는가 보다.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술을 땅에 묻었다가 시집가는 날 축하주로 쓰고 그 신부가 입으로 씹어 빚은 술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신랑이 죽으면 저승 갈 때 갖고 가게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명주(冥酒)라 불렀으니 그야말로 부부가 영원히 해로하는 셈이다. 술은 부부뿐만이 아니라 연인 간에도 불가분의 관계다. 해서 예이츠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면서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읊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술은 수줍거나 어색한 분위기로부터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신비의 힘이 있어서 마시는 이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술은 근심걱정을 잊는다 해서 '망우물'이라 했듯이 삶에 지친 사람들의 술잔엔 술이 반 눈물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술은 우리의 삶과 함께 해오며 희로애락을 같이 공유해준 불가분의 그림자인 셈이다. 따라서 지우고 싶은 지난날을 잊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이나 수줍은 자가 용기를 내어 보는 정도의 술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만 그 정도가 지나쳐 폭발하고 용기가 지나쳐 만용이 되면 추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쩌랴. 그러하니 스스로 통제하고 즐길 줄 아는 자유의지를 키우는 것도 하나의 훈련이요 여유라 할지니 더욱 유념하고 조심해야 후회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 한해가 가는 세모의 끝자락에서 적조했던 친지나 지인들을 만나 오랫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회포도 푸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자주 생기면서 술자리 기회 또한 많아질 때다. 성숙한 술 문화를 위해 술도 좋고 안주도 좋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진정한 좋은 그런 시간을 즐기며 후회 없기 위해서 이렇게 외치자. '진달래!'(진실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