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이스 신화에 '시지프스'이야기가 나온다. 호머는 그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신들은 그가 엿보기를 좋아하고 입이 싸서 신들이 하는 일들을 폭로한다고 미워했다. 하루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서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것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이 때문에 그는 완전히 제우스 눈 밖에 나서 저승사자 신에게 그를 잡아 처리하라 명령했다. 허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그가 오히려 저승사자 신을 묶어 가두어 죽이자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일이 이쯤 되자 몹시 화가 난 죽음의 왕 하데스가 시지프스에게 벌을 내렸다. 커다란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놓으라고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에 당도하면 돌은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밀어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고. 영원히 바위와 씨름을 해야만 하는 참혹한 형벌이었다. 헌데 이런 엿보기의 형벌이 인간세계에서도 일어났다. 옛날 영국의 코벤트리 마을에 심술 고약한 영주가 있어서 주민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폭정을 일삼자 부인이 앞장서서 제발 세금을 적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귀찮아진 남편은 빈말로 부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그러겠노라고 하였다. 차마 정숙한 부인이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알몸으로 마을을 돌기로 했다. 이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지자 마을사람 모두는 그녀의 사랑과 용기에 감복한 나머지 그 날만은 모두 창문을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 헌데 양복쟁이 탐이 몰래 커튼 사이로 부인의 알몸을 엿보려 하다가 그만 눈이 멀어 버렸다. 이때부터 '피핑 탐'은 몰래 엿보는 이를 빈정거리는 말이 되었다. 근자에는 전 세계가 불법도청으로 온통 시끄럽다. '피핑 시지프스'당국들이 된 것이다. 데이비드 브린은 책 '투명사회'에서 정보사회의 부작용으로 모든 것이 너무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프라이버시가 없는 '알몸사회'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투명사회라는 제목만으로는 얼핏 맑은 사회를 연상시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피의자를 심문하고 있는 방을 한 쪽에서만 볼 수 있는 일방통행 투시장면과 같은 바로 그런 걸 말한다. 남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나 탐내는 욕심이 바로 범죄의 시작이다. 해서 십계명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했거늘. 이는 우리가 남의 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보매체가 우리사회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즘에는 더욱 그러할 뿐 아니라 이를 책임 있게 사용할 의무도 뒤따른다는 말이다. 진실은 무섭도록 정직하여 간사함을 허용치 않아 사필귀정으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피해자가 겪어야하는 치명적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용서가 모든 것을 다 잊도록 해 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남의 알몸을 훔쳐보려했던 탐은 눈을 잃었다. 그러나 알몸도 마다했던 영주의 아내 고디바는 오늘날 초코렛의 이름으로 남아 만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