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의 신문·방송사에서 가장 힘든 업무에 시달리는 기자는 사회부 소속의 '사쓰마와리'였습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쓰마와리(さつまわり)는 경찰서를 순회한다(察廻)는 뜻의 일본어로서 경찰서를 중심으로 취재하면서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들을 칭할 때 사용되는 은어입니다. 한국 언론계에서 쓰이는 은어 중엔 아직도 일본어의 잔재가 꽤 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언론이 일제 강점기에 정착되면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입니다. 한국의 인쇄·출판·건설·봉제·법률 분야에서 여전히 일본식 용어가 남아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사쓰마와리가 힘들다고 한 이유는 언제든 지시만 떨어지면 출동해야 하는 '5분 대기조' 신세인 데다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밤낮으로 현장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쓰마와리의 쓴맛을 제대로 봤습니다. 이것 저것 다 빼고 한국을 뒤흔들었던 대형사고 2건만 되새겨도 온몸에 전율을 느낍니다. 다름아닌 19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6월의 삼풍백화점 붕괴입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참혹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대형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사쓰마와리를 했던 기자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도 그때 현장에서 함께 했던 기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연합뉴스 안수훈 애틀랜타 특파원과 최재석 LA특파원, 조인스아메리카 곽보현 미디어본부장 등입니다. 그들과 가끔 만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당시의 얘기를 하곤 합니다. 사고현장에서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진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쓰마와리들은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살인적인 업무부담에 짓눌립니다. 밤을 지새우는 것은 다반사이고, 며칠씩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취재현장을 지키며 끝없이 쏟아지는 데스크의 지시에 기사를 대량생산해야 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인근 주유소 부지에 무리지어 캠프를 쳤던 기자들의 모습은 노숙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수많은 기자들끼리 치열하게 벌이는 취재경쟁입니다.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언론사와 기자들은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좀 더 자극적이고 눈길을 끌만한 기사감을 찾아나섭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추락한 버스 안에서 숨진 무학여중 학생의 피묻은 가방 속에서 빼낸 수첩의 내용으로 애절한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서울 동부경찰서에 압수돼 있던 성수대교 점검일지의 일부를 후배와 함께 몰래 들고나와 일지가 그동안 허위로 작성돼 왔다는 기사를 쓰고 우쭐해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돌려주기는 했지만 사실 훔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런 게 '기자정신'이고, '사쓰마와리의 자세'라고 여겼던 당시의 사고방식이 죄책감을 상쇄시켰던 것 같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에도 슬픔에 젖어있는 실종자 가족 인터뷰를 놓고 경쟁을 해대는 등 무리한 취재행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쓰마와리 경험이 많은 기자들은 사고 첫날, 둘째날, 셋째날 어떤 기사를 어떤 방향으로 써야할지 나름대로 로드맵을 갖게 됩니다. 그게 기자의 능력이고, 그렇게 해야 보도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보면 팩트 위주의 차분한 보도에서 점점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슬그머니 과장하게 되고, 불확실한 사실을 예단해 보도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감동을 자아내고, 또한 공분을 일으키기 위해 드라마적 기법을 가미하기도 합니다.

일본 지진참사를 보도하는 한국의 언론을 보니 예전과 비슷합니다. 방송은 전반적으로 흥분돼 있고, 자극적입니다. 어느 신문에선 '일본 침몰'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습니다. 한국 언론이 마치 사쓰마와리 집단이 된 모습입니다.

일본의 언론은 이미 차원이 다른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반세기도 더 지난 옛날에 일본이 전수한 사쓰마와리식 보도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 일각에서 일본 방송과 신문의 침착하고 사려깊은 보도행태를 접하면서 자성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