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선]

검사 결혼식에 화환 5개…휴일 골프 예약 '반토막'

호텔 노력에도 연회장 한산…지역축제들 '몸 사리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한국 일상에 대변화가 시작됐다. 한국이 9월28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동창회·향우회·종친회 등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인맥사회'에도 격변이 예상된다. 법 시행 후 첫 연휴, 한국 사회 변화의 현장이 전국에서 확인됐다.

 연휴 첫날인 1일 북한산 등 전국 유명 산과 강변 자전거도로에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반면, 골프장은 최성수기임에도 예약률이 100%를 채우지 못했다. 경기 용인 기흥구의 한 36홀 규모 회원제·대중제 겸용 골프장은 이날 회원제에 150여팀이 예약, 평소의 90%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주 100여팀으로 꽉 찼던 대중제도 이날은 40여팀에 그쳤다.

 결혼식장에서는 화환이 줄고, '화환은 사절합니다'라고 쓰인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4층에서 열린 서울지역 검찰청 소속 한 검사의 결혼식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날 신랑·신부 측에 전해진 화환은 5개에 그쳤다. 

 모임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박성수씨(53·서울·회사원)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 대학 동창들과 가족 동반으로 이번 주말에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는데 친구 가운데 공무원들이 꺼려 장소를 변경하게 됐다"며 "학연·지연 등 유난히 다양한 한국의 공동체문화가 김영란법으로 개인적 문화로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미풍양속으로 여겨졌던 스승과 제자 간의 선물도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일인 지난달 28일 접수된 '1호 신고'가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준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현장 분위기는 변화의 태풍이 예고됐다. 일부 학부모는 아예 학부모 회비를 걷지 말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가을축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법 저촉 여부를 따지기 위해 자치단체들에선 주말에도 대책회의가 이어졌다. 병원을 상대로 한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의 '반칙'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산의 한 병원 관계자는 "수술 날짜를 빨리 잡아달라거나, 입원실을 빼달라는 부탁이 지난달 28일 이후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전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도 예외 없이 밥값은 '각자 내기'를 하고 있다. 기자들에게도 음식물이 제공되지 않는 등 취재 현장도 달라졌다.

 '명예'로 통하던 공공기관 이사나 위원직도 기피 대상이 됐다. 민간 위원이더라도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으로 활동하면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해 법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과정에서 진통은 겪겠지만, 긍정적 변화를 기대했다. 정선기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 시행에 따른 과도기적 진통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정서나 인간관계가 바뀌고 사회학적 개념에서의 개인화가 증대되면서 한편으로는 보다 합리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으로 어려움에 처한 분야도 적지 않다. 축산농가와 화훼농가, 고급음식점, 호텔 등은 된서리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