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못하는 중년 자식과 '불편한 동거'…울컥했다 비극적 참사 초래 
알코올 중독·실업·이혼…독립 못한 자식과의 오랜 갈등이 범죄 촉발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손현규 기자 = 부모 자식 관계를 '천륜'이라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뜻이다.

어떤 인연보다 깊고 소중한 천륜을 깨고 노부모가 중년 자식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비극적인 참사로 이어지는 '흉폭한 사건'이 잇따른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20일 말다툼 도중 40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A(79)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19일 오후 4시 5분께 인천시 중구 집에서 아내와의 대화에 끼어든 아들(46)과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충북 단양경찰서도 19일 자신과 아내를 폭행하는 아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B(7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B씨 아들(51)도 존속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B씨는 지난 18일 오후 7시께 단양군 대강면 집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들을 혼내다 아들이 자신과 아내를 폭행하자 흉기로 가슴 부위를 한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아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다행히 중상을 입진 않았다.

수십 년을 애지중지 키워온 금쪽같은 자식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황혼의 분노'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독립하지 못한 채 제 구실을 못하는 중년 자식과의 불편한 동거다.

은퇴할 나이가 돼 집안 가장이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조금은 느긋한 말년을 보내고 싶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노후는 막막하고, 제 구실을 못하는 자식 걱정까지 해야 하는 답답한 심정이 우발적인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B씨는 경찰에서 "농사일도 거들지 않고 허구한 날 빈둥거리는 아들이 또 술을 먹고 들어오길래 꾸중했더니 목을 조르고, 말리는 집사람까지 폭행했다"며 "홧김에 흉기를 들었는데 아들이 '찌를 테면 찔러보라'며 내 손을 제 앞으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A씨 아들도 알코올 의존 증상으로 치료를 받아 왔으며, A씨는 이런 아들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부모와 성인 자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두 사건은 동전의 양면처럼 부모에 대한 자녀의 학대나 폭력과 같은 맥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노인과 중년 자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범죄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발표한 '2015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1만1천905건으로 전년보다 12.6% 증가했다.

사법기관 등에 의해 노인학대로 판정받은 건수도 8.1% 늘어난 3천818건이었다.

전체 가해자의 69.6%가 친족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아들이 36.1%에 달했다.

경찰청 집계를 보면 2005년부터 10년간 부모를 살해하거나 폭행한 범죄는 9만4천700여 건이며,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중장년층으로 추정된다.

인생 황혼기를 맞은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힘없는 노인의 경우 자녀와 물리적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주변의 흉기를 집어 드는 경우가 많아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노부모와 자식 간 범죄가 일어나는 가정환경을 보면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불편한 동거'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는 건강 상태와 경제 형편이 안 좋아 부양받을 수밖에 없고, 실업, 이혼 등 상태인 자녀들 또한 부모와 같은 주거공간에서 지내야 할 처지인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등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서로 필요해 내키지 않는 동거를 하다 보니 극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상황이 악화하면 극단적인 경우 서로를 해치는 범죄로 이어진다.

특히 자녀가 어렸을 적 아동학대 같은 가정폭력이 있었거나 외도 등으로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경우 갈등은 더욱 커진다.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이미진 교수는 "노부와 중년 자녀 간 범죄는 오랜 갈등이 곪아서 터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관계가 괜찮았다가 술 좀 먹었다는 이유로 서로 죽이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건국대 경찰학과)도 "오랜 기간 갈등이 축적된 상태에서 인격적 모멸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끔찍한 공격적 행위가 나타나기도 한다"며 "성인이 된 뒤에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문화에 개인주의가 심화하면서 노부모와 자녀 간 범죄가 잦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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