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적대·여성 비하·경쟁자 공격…백인 표심 결집 효과도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핵협상…푸틴은 오바마보다 나은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8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이변을 일으키며 승리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내내 막말을 쏟아내며 주목받았다.

이민자 적대, 여성 비하, 경쟁자 공격으로 크게 분류될 수 있는 트럼프의 발언들은 올해 미국의 대선을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드는데 한몫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부터 '거친 입'을 선보였다.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면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마약과 범죄를 가져오는 '성폭행범'으로 불렀다.

대선 내내 유지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약속도 출마 선언 자리에서 나왔다.

막말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민자 적대정책을 통해 백인 중심의 유권자 표심을 노린 트럼프의 막말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2001년 9·11 테러 때 많은 미국 내 아랍인들이 환호했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대선판에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민자 적대 발언의 최고봉은 지난 8월 트럼프의 '무슬림 비하'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무슬림계 전사자의 부모인 키즈르 칸 부부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자신을 비판한 것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칸의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발언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무슬림 비하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의 발언 이후 전사자 유족 모임과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트럼프의 '인간적 품격'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트럼프는 멕시코 외에 중국을 향해서도 날이 선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올해 5월 유세에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거론하며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rape)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6일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선 중국이 미국을 자신들의 '돼지 저금통'(piggy bank)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를 트럼프는 재차 강조했다.

멕시코, 중국과는 달리 러시아에는 애정 어린 태도를 트럼프는 줄곧 유지했다.

그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라며 치켜세웠다.

친러시아 성향이 도를 넘어 트럼프는 7월 말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해킹을 요청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지도부 이메일 해킹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가 사라진 (클린턴의) 이메일 3만여 건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핵무기 위협 강도를 높이는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색다른 접근 방식을 보였다.

트럼프는 지난 6월 15일 애틀랜타 유세 과정에서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대체 누가 그가 핵무기를 갖기를 원하겠는가? 그리고 (핵무기를 포기하게 할) 가능성은 있다. 나는 오직 우리를 위해 나은 협상을 할 거다"라며 "힐러리는 '그가 독재자와 대화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만 좀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다"라며 "아마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나는 거기(북한)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분께 말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가 (미국에) 오겠다면 만나겠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도 대선 내내 트럼프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트럼프는 지난해 말 공화당 경선의 후보 TV토론이 끝나고 토론진행자였던 폭스뉴스의 여성 간판 앵커 메긴 켈리를 '빔보'(섹시한 외모의 여성이 머리가 비었다고 깎아내리는 비속어)라고 부르며 '생리'를 암시하는 듯한 막말을 했다. 토론에서 켈리가 과거 여성을 개, 돼지 등으로 비하했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폭로하자 '분풀이성' 막말로 맞선 것이다.

트럼프의 과거 여성 비하 발언들도 소환됐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과거 트럼프의 여성 폄하 발언을 까발렸다.

당시 클린턴은 미스 유니버스 출신인 "알리시아 마차도를 트럼프가 '미스 돼지', '미스 가정부'라 부르며 살을 빼라고 모욕했다"고 폭로했다.

갑작스러운 폭로에 진땀을 뺀 트럼프는 토론 다음날 폭스뉴스 방송에 출연해 마차도가 "역대 (미스 유니버스 중) 최악이었다. 진짜 최악이었다"며 "그녀가 몸무게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것은 정말로 큰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를 최대 위기로 몰고 간 '음담패설 녹음파일' 속 외설 발언도 큰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는 2005년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드라마 녹화장에 가는 버스 안에서 여성 생식기를 가리키는 단어를 사용해 "○○를 움켜쥐고(Grab them by the ○○)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막판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와중엔 "단언컨대 그녀는 나의 첫 선택이 될 수 없다"는 발언으로 더 큰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막말은 경쟁 후보들에게도 향했다.

대선후보 3차 TV토론에서 클린턴이 은퇴자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 증세를 하겠다며 트럼프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도중 트럼프는 "정말 끔찍한 여자"(Such a nasty woman)라고 끼어들었다.

공화당 경선 후보들도 트럼프 막말의 희생자였다.

트럼프는 경선 경쟁자였던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최고경영자(CEO)의 얼굴을 조롱했고 테드 크루즈와 마르코 루비오에겐 각각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 '꼬마 마르코'(little Marco)란 별명을 선사했다.

클린턴 역시 '별명짓기 달인' 트럼프로부터 '부정직한 힐러리'(Crooked Hillary)란 원치 않는 별명을 얻었다.

대선 내내 이어진 막말로 공화당 지도부까지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지만 트럼프는 당내 강경파의 표심을 자극하면서 대선 티켓을 따냈고 결국 백악관 입성에까지 성공했다.

대선을 거치면서 미국이 분열과 대립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국민 통합' 숙제를 떠안은 트럼프가 막말을 거두고 화합의 메시지들을 던져나갈지 주목된다.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