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배우 김하늘(38)은 멜로 영화 '바이 준'으로 데뷔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서른을 앞두고 출연한 MBC TV 드라마 '90일, 사랑한 시간'은 시청률은 낮았지만 적잖은 사람이 아직 기억하는 작품이다.

어느덧 마흔이 머지않은 나이가 된 김하늘은 최근 KBS 2TV 멜로드라마 '공항 가는 길'을 마무리 지었다.

"멜로는 배우에게 항상 욕심나는 장르에요. 20대 초반에 찍은 '피아노'(SBS TV·2001)도 그렇고, 매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쯤 멜로 연기를 하니 좋아요. 특히 '공항 가는 길'은 제 나이, 제 감성과 딱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1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MT서울에서 만난 김하늘은 "인생에서 꼭 넘어야 하는 산을 넘은 것 같아 홀가분하다"고 털어놓았다.

◇ "드라마 메시지에 공감…'불륜' 의식 않고 선택"

김하늘은 그동안 멜로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거둔 성적이 더 좋았다. 그 때문에 잔잔한 멜로인 '공항 가는 길' 성적도 내심 우려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또 지난봄 결혼한 배우에게 불륜은 부담스러울법한 소재였다.

"관계를 통한 공감과 위로라는 드라마 메시지가 정말 와 닿아서, 작품을 선택할 때 불륜이라든가 이런 주변 요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저와 제작진 모두 최수아와 서도우의 감정선에 몰두했고, 드라마에서도 그런 것이 두드러지게 보인 것 같아요."

김하늘은 승무원 최수아가 직장 상사인 남편을 대할 때, 12살 딸을 대할 때, 자신을 흔들어 놓은 남자 서도우(이상윤 분)를 대할 때, 가까운 친구 송미진(김여진 분)을 대할 때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도 연기로 보여줄 부분이 많다고 판단했다.

기혼 여성인 최수아가 마찬가지로 가정이 있는 서도우를 선택한 것에 공감했느냐에 물었더니 김하늘은 오른쪽 귀를 살짝 잡으며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로 생각하면 다른 문제죠. 캐릭터라고 생각하니 100% 공감해 연기한 것이고, 저를 캐릭터에 대입시키지는 않았어요. 저는 남편과의 관계도 (최수아와) 많이 달라요. 아이가 12살이 될 때까지 부부가 상하관계로 있는 것 자체가……."

그는 이상윤에 대해서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서도우와 싱크로율이 맞았던 것 같다"면서 "(캐릭터와) 정말 맞는 사람이 연기해서 더 어우러진 것 같다"고 호평했다.

◇ "내가 생각한 만큼 연기로 표현할 수 있었던 작품"

영상미가 돋보인 '공항 가는 길' 촬영은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들을 돌아다니느라 육체적으로 고단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편안했다는 게 김하늘의 설명이다.

명작 '봄날은 간다'의 이숙연 작가가 대본을 일찌감치 완성했기에 최수아를 더 일찍, 더 깊이 알 수 있었던 것이 도움됐다. 연기 연륜이 쌓인 데다, 자기 나잇대와 맞는 역할을 한 영향도 컸다.

"'90일, 사랑한 시간' 때만 해도 감독님(오종록 PD)이 이것저것 주문한 덕분에 제 역량보다 더 많은 부분을 끄집어내 보여드렸어요. '내게 저런 모습이, 저런 에너지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던 작품이죠. 이번 감독님(김철규 PD)은 그만큼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제 제가 생각한 만큼 연기로 표현할 수 있단 걸 알게 됐어요."

김하늘은 "워킹맘이라는 캐릭터도 좋았다"면서 "주변 친구들이 모두 직장인인데 다들 환호하더라"라고 전했다.

김하늘은 모성애 연기도 무리 없이 해낸 데 대해 "아역 김환희의 도움이 컸다"면서 "효은이(김환희 역)를 뉴질랜드로 떠나보내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김환희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 회상했다.

김하늘은 캐릭터에 빠져드는 일의 중요성을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다고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저도 이 드라마에 서서히 젖어든 것 같아요.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잔잔하면서도 힘이 있는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많이 사랑해 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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