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7명에 장기 기증 '제주소녀'부모에 감사 글 잇따라…심장 이식 美 의사 보은편지 

[월요화제]

캘리포니아주 외과의 "저도 더 많은 환자 살리겠어요" 다짐 
애리조나 장기기증네트워크도 "새 삶준 유나 영원히 못잊어" 


 "귀한 따님의 심장 덕분에 9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끝났습니다. 만나 본 적도 없는 저의 생명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주도에 사는 김제박(50)·이선경(45)씨 부부는 지난달 16일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지난 1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숨진 딸 유나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여성이 보낸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외과 의사 마리아씨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심장 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그의 쌍둥이 여동생도 같은 병을 앓다가 심장 이식을 받지 못해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씨는 A4용지 3장 분량 편지에서 "동생은 이 세상에 없지만 제 기억 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유나는 저와 제 동생 두 생명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외과의사로서 앞으로 더 많은 환자를 살리겠다"고 했다.

 김씨 부부의 맏딸인 유나양은 열여섯 살 때인 2014년 애리조나주로 유학 갔다가 지난 1월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간 부부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누워 있는 딸의 손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일어나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부는 며칠 밤을 병원에서 지내며 '딸의 죽음'이라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자 '장기 기증'이란 어려운 선택을 했다.

 어머니 이씨는 "유나 손을 잡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뇌사 판정을 받은 17세 소녀의 아버지가 딸의 장기를 기증해서 여러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줬다'는 기사가 문득 떠올랐다"며 "그때부터 '장기를 기증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며 며칠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결국 부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딸도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증을 결심했다. 김양의 심장과 각막 등 장기는 모두 27명에게 이식됐다.

 김양의 1주기를 앞두고 애리조나 장기 기증 네트워크에서도 편지를 보내왔다. 이 단체 대변인 마르셀씨는 "유나의 장기를 이식받은 두 살 여자아이 부모가 '아이가 건강해져서 아장아장 걷는다며 모두 유나 덕분'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며 "기증받은 모든 사람이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끝내게 해 준 유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어머니 이씨는 "아직까진 마리아씨 편지에 답장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딸을 잃은 슬픔을 아직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유나 얼굴이 흐릿해질 때쯤이면 용기를 내서 마리아씨에게 연락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아직도 딸이 그립다. 그러나 유나의 장기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며 딸의 흔적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