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이태원 살인' 진범 패터슨 징역 20년 확정  

 피해자 어머니 "범인이 활개치는 것을 보고 속 다 탔다"
 검찰 오판 20년 허비 엉뚱한 범인 잡고 출금 조치 안해
 美 도주 진범 송환 법의 심판,"지체된 정의, 정의 아냐"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眞犯)인 미국인 아서 패터슨(37)에게 25일 한국 대법원이 징역 20년형을 선고<본보 25일자 1면 보도>했다. 지난 1997년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이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진범을 놓쳐버린 검찰의 실수로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데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법조계에선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사건"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늦었지만 아들 한 풀었으면"

 "피의자의 상고를 기각한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 박보영 대법관이 짤막한 판결 주문(主文·결론)을 선고하자 방청석에 긴장한 채 앉아 있던 이복수(75)씨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어머니이다.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도 이제 한(恨)을 풀었을 거예요. 자기를 죽인 사람이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속이 상하고 아팠을까…." 이씨는 채 말을 맺지 못했다.

 신문에 따르면 사건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여자 친구를 기다리다 화장실에 들렀던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씨가 목과 가슴 등 9군데를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는 둘이었다. 17세 동갑내기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 미군속의 자녀들이었던 둘은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초동수사를 맡았던 CID(미 육군 범죄수사대)는 패터슨을 범인으로 봤다. 그가 자책하는 것을 들었다는 친구의 진술도 있었고 범행에 사용한 칼, 그가 불태우려 한 피 묻은 셔츠도 발견됐다.

 ▶17세때 범행, 법정 최고형

 그런데 검찰로 넘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서울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한 박모 검사는 "흉기로 찔린 각도를 볼 때 키가 큰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의사의 소견에 집착했다.

 에드워드 리는 키 180㎝의 거구, 아서 패터슨은 키 172㎝에 날렵한 체구였다. 박 검사는 에드워드 리가 176㎝가량에 보통 체구였던 피해자 조중필씨를 위에서 누르듯 제압하며 흉기를 휘둘렀다고 결론지었다.

 1심과 2심은 검찰의 판단을 수용해 에드워드 리가 범인이라고 했지만 1998년 대법원은 "(리가 범인이라는) 패터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대법원의 판결 직후 리에 대한 수사에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이 손 놓고 있던 사이 출국 금지도 돼 있지 않았던 패터슨은 1999년 미국으로 도주해버렸다. 조중필씨의 끈질긴 요구끝에 패터슨은 도주한 지 16년 만인 2015년 9월 범죄인 인도 협약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다시 시작된 사건 공판에서 패터슨은 여전히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패터슨이 범인이 맞는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범행 당시 17세였던 패터슨의 나이가 소년범(만 18세 미만)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년범에게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 판단은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유지됐다.

 이복수씨는 대법원 선고 직후 "착한 아들이었는데….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못 해보고 죽었다"며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