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작이 아니었던 작품들이 잇따라 성공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유를 들여다보니 공통점이 있다. 

월화극장에서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방영 전 주인공 홍길동 역 캐스팅이 난항을 겪다가 주연 경험이 없는 배우 윤균상이 발탁됐됐을 때 업계의 관심과 기대치가 낮았는데 ‘역적’은 보란듯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첫 방송부터 월화극장 2위에 올라서고, 2회만에 시청률 두자릿수를 기록한 ‘역적’은 정상을 달리는 SBS ‘피고인’을 맹추격하는 위협적인 적수가 되고 있다.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배우 김상중과 홍길동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이로운의 열연, 그리고 사극 충성팬들의 힘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13일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윤균상의 호연에 팬들이 환호하고 있는데, 평범한 듯하지만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서민 캐릭터 그리고 이번에 데뷔 이래 첫 주연 자리에 선 윤균상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극중 홍길동은 어린 시절 애기장수의 힘을 잃고 평범하게 순응하며 살려고 하지만, 앞으로 부조리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기 때문.

KBS2 수목극 ‘김과장’도 비슷하다. 베일이 벗겨지기 전에는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사임당, 빛의 일기’가 절대강자가 될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과장’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정상을 달리고 있다. 

기대작이 아니었다는 점도 같지만, 팍팍한 현실에 통쾌함을 주는 마이너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겹친다. 한 관계자는 “요즘 실제로 웃을 일 없는, 비관적인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세태를 비판하면서도 맥 없이 당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게 보이지 않는 큰손들에 ‘한 방’을 먹이는 이야기가 어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톱스타들이 하면 어울리지 않을텐데, 윤균상과 남궁민 등 그동안 각광받지 못한 배우들이 연기하니까 더 수긍이 되고 응원을 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김과장’에서는 B급 병맛 코드 캐릭터를 남궁민이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면, ‘역적’에서는 윤균상이 민초 홍길동의 소탈한 모습을 잘 소화하고 있는 것.

영화 ‘조작된 도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소 허무맹랑하다 할 수 있는 전개에 전문 평론가들의 평점은 그리 좋지 못했던 ‘조작된 도시’는 전문가의 눈이 무색하게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PC방에서 게임이나 하는 백수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날벼락처럼 살인누명을 쓰게 됐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며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통한 것.  

지난해 방송된 OCN ‘38사기동대’도 착하고 평범하게 살던 세무공무원이 사기꾼들과 힘을 합쳐 더 악질인 큰손들의 뒷통수를 치며 현실을 바로 잡는 통쾌한 스토리로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마이너리그의 사이다 같은 이야기는 올 상반기에도 꾸준히 나올 전망이다. 오는 5월 KBS2 월화극으로 예정된 ‘쌈, 마이웨이’와 MBC 주말극 ‘도둑놈, 도둑님’ 등이다. ‘쌈, 마이웨이’는 세상에서 조연으로 살기를 종용받는 계약직 회사원이 쳇바퀴를 박차고 나와 인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마이너리티의 성공기를 그릴 예정이고, ‘도둑놈, 도둑님’은 현대판 홍길동으로 세상을 부조리하게 쥐고 흔드는 큰 도둑을 잡는 착한 도둑의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답답한 속을 얼마나 사이다처럼 뻥 뚫어주느냐가 인기의 관건이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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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김과장’의 남궁민. 제공|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