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없이 쫓겨나는 美입양아 느는데…

[이슈진단]

법무부 "외교부 소관" 외교부 "법무부에 물어보라" 책임회피
미국내 시민권 미취득 입양인 3만5000명 중 1만9429명 한국계

 필립 클레이라는 미국 입양아가 지난 5월21일, 서울 북부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한국 이름은 김상필. 8살이던 1983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에 입양, 두차례나 파양이 됐고 29년간 수차례 경찰서를 들락, 약물 중독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가 된 그는 결국 2012년 한국으로 추방, 그 후 약 5년. 그는 한국말은 한마디도 하지못했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여러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적절한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14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생을 마감했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동들이 뒤늦게 시민권자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 추방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흡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외 입양인 추방 실태에 대해 출입국 관리를 관장하는 법무부는 "외교부 소관"이라고,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외교부는 "법무부에 물어보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라고 세계일보가 23일 보도했다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의 사례처럼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 아동들이 시민권 취득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 아동들이 받은 비자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2000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CCA)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당시 '입양이 완료된' 만 18세 이하 입양인은 별도의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CCA는 입양 아동의 비자에 따라 적용이 달라진다.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동에게는 IR-3와 IR-4 두 가지 비자가 주어진다. IR-4는 영주권은 주어지지만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고, IR-3는 두 가지 모두 자동으로 부여된다. 

 특히 IR-4비자는 미국에서 입영이 완료된 사실이 확인돼야만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출신 해외 입양 아동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미국의 경우 국적(연방정부)과 입양(주정부) 업무가 이원화돼 있어 IR-4 비자로 입양된 아동은 추후 별도로 입양절차를 밟아야 시민권을 받는다. 현지 양부모들이 입양 사실을 법적 확인 절차를 하지 않으면 필립 클레이씨와 같은 시민권 미취득자가 양산되는 구조다.

 한국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2013년부터 입양아부터 IR-3 비자를 받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전 입양아 중 상당수는 국적 취득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CCA적용이 안 되는 18세 이상 성인 입양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시민권 취득 미확인자가 2만3000여 명으로 조사됐다. 여기엔 18세 미만 아동은 제외돼 이들을 포함시킬 경우 시민권 취득 미확인자의 수가 더 늘어난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복지부는 그 동안 CCA 제정으로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며 안이한 태도를 보여왔다. 또 2012년 입양아의 권리 증진을 위해 헤이그국제입양협약에 서명하면서 2년 내 비준을 약속했으나 5년째 지키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해외입양인 중 약 3만5000명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확인한 한국 출신 중 국적 취득 미확인자는 모두 1만9429명. 결국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해외입양인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출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