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매케인 美의원, 수술자국 선명한 얼굴로 의회 투표 참석

뉴스초점 / '1류 정치'와 '3류 정치'

"의원에겐 의회가 전부, 소중한 한표 행사하겠다"
 아들면회·여행으로 추경 표결 불참한 우리 의원

 # 지난 25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내 상원 본회의장. 여든을 훌쩍 넘은 백발의 노신사가 입장하자 의원들이 모두 일어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왼쪽 눈 위에 수술 자국이 선명한 채로 연단에 선 주인공은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불과 일주일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있어야 할 그가 온전치 않은 몸을 이끌고 의회를 찾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호 공약인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폐지 논의에 관한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여야의 팽팽한 대립으로 한 표가 아쉽던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매케인 의원의 살신성인이 빛을 발하며 오바마케어 폐지 논의절차를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한 표결이 시도되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일제히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결국 재적의원 수의 과반인 150명을 채우지 못한 의결정족수 미달로 추경안 처리에 급제동이 걸렸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 의원들의 참석을 독려한 끝에 추경은 정부안이 제출된 지 45일 만에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추경 처리 과정에서 앞장서 뛰어야 할 여당 의원이 26명이나 불참한 것으로 알려지며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불참사유 가운데는 군대 간 아들의 면회나 부모님과의 효도여행 등 개인적인 일정도 적지 않아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같은 대조적인 장면은 두 나라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의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국회의원이 국민들의 삶을 바꾸는 각종 법안 처리 과정을 얼마나 신성하게 인식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매케인 의원은 뇌종양 수술 이후 일주일 만에 복귀한 현장에서 "여기 다시 서보니 의회의 절차와 관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아직 왼쪽 눈 위에는 혈전 제거 수술 자국이 선명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중대 법안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의회주의자의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매케인 의원은 동료 의원들을 향해 초당적 협력을 당부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있는 것이 없다. 우리가 올해 한 일은 연방대법관으로 닐 고서치를 인준한 것 뿐"이라며 "(상원은) 내가 기억하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당파적이고 더 파벌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서로에게 솔직해지자. 그리고 정상적인 체제로 돌아가자. 미국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매케인 의원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조차 "투표하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마다하지 않은 매케인은 매우 용감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고 경쟁 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유권자들도 찬사를 보냈다. 

 매케인 의원이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동안 한국의 일부 의원들은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부 여당이 사활을 걸었던 추경이 어렵사리 통과되긴 했지만  본회의에 불참한 여당 의원 26명 가운데 18명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나머지 8명은 개인적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서둘러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이용득 의원은 장인·장모를 모시고 유럽으로 효도여행을 갔고 우상호 의원은 군 복무 중인 아들 면회를 갔다고 해명하며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사람 자체가 달라서 그런걸까. 그저그런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