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험 준비에 자취방서 나홀로…"연휴 길어 억울하지만 내년에 즐겨야죠" 

(대전=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 "추석에 집에 가지 않고 혼자 자소서(자기소개서)나 써야죠.", "연휴가 길어 가족과 여행 가려고 했다가 포기했습니다."

최장 열흘을 쉴 수 있는 추석 연휴가 시작됐지만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청춘이 적지 않다.

치열한 취업 전쟁 속에 시험을 코앞에 둔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과 취업 준비생(취준생)들은 열흘이 넘는 연휴가 반갑기 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럽다.

황금연휴의 기쁨보다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송구함 때문에 집에 가지 않고 혼자 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유치원 교사가 꿈인 오찬미(23·배재대 유아교육학과 4년)씨는 추석 연휴 기간 단기 이용권을 끊고 독서실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친지들 틈에 앉아 졸업 후 취업 계획과 진로 문제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 오히려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서다.

임용고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을 때 흔쾌히 지지해준 부모님을 생각하면 집에서 쉬는 것도 미안하다.

오씨는 11월에 있을 생애 첫 임용고사에 좋은 결과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이후도 대비하고 있다.

졸업 후 내년부터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요즘 틈틈이 시험 준비 종잣돈을 모으고 있다.

교내 근로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1천만원을 모아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1년간 시험에만 집중한다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오씨처럼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김모(26)씨도 이번 추석 연휴 내내 모교 고시 준비반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험을 생각하면 열흘을 넘도록 쉴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임용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집에는 이번 추석 연휴에 못 갈 것 같다고 연락을 했다"며 "사실 연휴가 엄청 길어 가족과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대학 졸업예정자인 임재희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에 들렀다가 할머니 댁에 가려면 족히 10시간은 차를 타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는 "지금까지 쭉 가족과 추석을 보냈는데 올해 처음 같이 지내지 못하게 됐다"며 "가족이 모인 곳에서 취직 못 했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 혼자 자취방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다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불편한 심경을 전했다.

세무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 이재현(26)씨도 열흘이나 되는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다.

공무원 준비를 처음 시작한 2년 전에 가졌던 자신감은 시험에 떨어지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씨는 "이런 기분으로 연휴 기간 친지를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공부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열심히 해서 내년 추석 연휴는 가족과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들도 연휴 기간 집에 가지 않는 공시생과 취준생이 많을 것으로 보고 학교 시설을 개방하는 등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대전권 대부분 대학 도서관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도서 대출업무만 중단하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은 정상 운영하기로 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취업·시험 준비로 집에 가지 못하는 재학생 또는 졸업생 들은 언제든지 도서관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문을 열기로 했다"며 적극적인 이용을 당부했다.

young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