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인물]

최승리씨, 7살때 일본여행 갔다 부모잃고 형과 함꼐 미아
미국 입양후 이 악물고 공부, 의대 입학 4년만에 의사면허

교환학생으로 고국 방문했다 친부모와'눈물의'극적 상봉
한국군 입대 전역후 서울대 외과 인턴, 감격의 성화봉송도

"평화를 상징하는 불꽃의 온기가 북한 땅 전역으로 번졌으면 합니다."

최승리(25)씨에게 조국이면서 타국이었던 대한민국에서의 성화 봉송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가 화해와 평화의 이미지로 인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25일 광주광역시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달렸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씨는 한국과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났고 1998년 미국에 입양돼 자랐다. 일곱 살 때 가족 여행으로 떠난 일본에서 세살 위 형과 함께 부모를 잃고 미아가 됐다. 최씨는 "당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여권도 없었고 말도 안 통했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 목사였던 양아버지는 형제를 정성껏 키웠다. 양아버지가 당뇨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최씨는 "의사가 돼 치료해 드리자"고 결심했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16세 때 웨이크 포리스트 의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2011년 의사면허를 취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보통 8년 걸리는 과정을 4년 만에 마친 것이다.

의대 재학 중이던 2010년 3월 연세대 의대 교환학생으로 한국 땅을 밟았고, 학교에 강연 온 방송국 프로듀서 도움을 받아 친부모와 연락이 닿아 극적으로 상봉했다. "눈물만 흘렸어요. 서먹해서 거의 대화도 못 나눴죠." 50대 친부모도 눈물만 삼킨 채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최씨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뉴스를 접하고 군 자원 입대를 결심했다. 국적을 회복하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2015년 2월 듀크대병원 인턴 과정을 중단한 채 육군 31사단 독수리연대 의무중대 의무병으로 입대했다. 상명하복의 군대는 생소한 곳이었지만, 그는 대한민국 사나이로 거듭났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전역한 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인턴을 시작했다. 지금은 친부모와 함께 지내기 위해 인턴 과정을 중단하고 광주에 머물고 있다. 그는 "국내 최고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며 "주위에 인술을 베풀며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