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입구서 北향해 '대화 위한 대화 안한다' 발신…대화의 장 악용 차단
'힘 우위로 평화 창출' 해석도…'이간계' 우려 美엔 '염려 말라' 메시지
보수층의 '대화 부작용 우려' 불식하려는 포석…"내부 분열 더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5일 "과거처럼 유약하게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는 언급은 남북대화가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국내를 향한 다차원적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노인회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같이 언급하면서 "강력한 국방력을 기반으로 대화와 평화를 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일차적으로 북한을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화해 제스처와 우리 정부의 호응으로 불과 나흘 만에 대화의 문이 열린 국면에서 선제적으로 대북 메시지를 던진 성격이 짙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게 그 핵심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남북대화 재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지만, 자칫 대화에만 매몰돼 대화 내내 북한에 끌려다니거나 한 때 화해 무드가 무르익다가도 도발카드를 활용한 북한의 '변심'으로 한반도 긴장수위가 또다시 치솟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에서 '강력한 국방력'을 내세운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대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손을 잡은 것은 그 동안 핵실험과 숱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도발에 물러서지 않고 탄탄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무력시위 등 단호한 군사적 대응을 한 결과물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한 대북 압박·제재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과 대화는 해 나가되 군사력이라는 '근육'을 불려 나가면서 힘의 우위에 의한 평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는 하겠지만, 국방력 강화 등 우리가 해야 할 일도 확실히 챙겨가면서 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울러 9일부터 본격화하는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거나 남북대화의 장을 도발 명분 쌓기로 악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을 향한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백악관은 전날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 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문 대통령에게 '100% 지지'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은 북한의 남북대화 제의를 한미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전술로 보는 게 사실인 만큼 북한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언급은 과거처럼 대화에만 얽매여 남북관계는 좋아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수'(惡手)를 두지 않겠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국론이 하나로 모여야 남북대화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 평화를 구축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만을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남북대화를 이른바 '퍼주기'로 인식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국내 보수층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국방력이라는 힘의 우위를 앞세우면서 철저하게 실리적인 대화만을 추구해 보수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가 물론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내부의견의 분열"이라며 "어르신들께서 새 정부 대북 정책을 믿고 지지해 주시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주시면 제가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보수층까지 껴안으면서 하나된 국론을 바탕으로 남북대화를 투명하고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문 대통령의 복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