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간지 등 보도 "저무는 64세 메르켈 역할, 41세 마크롱이 넘겨받고 있다"

메르켈, 연정에 발 묶인 사이 마크롱 유럽통합 주도권
강력한 국민 지지 바탕 EU 등 경제·외교 분야서 활약
트럼프, 푸틴 정상회담…시진핑은 국빈 대우 극진 대접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미국의 노력을 중심으로 동북아 정세를 마크롱에게 설명했다.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트럼프가 국제 정치 현안을 상의하는 유럽의 파트너로 마크롱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독일 일간 디 벨트는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랫동안 흔들림 없는 유럽의 리더였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조금씩 마크롱이 넘겨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때 메르켈을 "미시즈 유럽(Mrs. Europe)"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마크롱을 "유럽의 차세대 지도자"라고 치켜세운다. 13년째 재임하고 있는 64세의 메르켈이 저물어 가고, 작년 5월 취임한 41세의 마크롱이 떠오르는 양상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마크롱은 무엇보다 외교 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지도자로서 역량을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을 에펠탑으로 초청해 식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베르사유 궁으로 불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8일엔 취임 후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중국으로선 작년 19차 공산당대회 이후 처음 맞는 유럽연합(EU) 정상이다. EU와 협력에 프랑스를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마크롱은 유럽 통합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주도권을 쥐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EU의 경제 정책을 지휘하는 'EU 재무장관'을 신설하고,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차원의 예산안을 짜는 방안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역동적으로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고질적인 저성장·고실업을 해결하면서 국민의 신임을 얻은 데 있다. 감세 정책을 가동하고 비대한 공공부문을 줄이고 있다. 결과는 성적표로 나타나고 있다. 2012년 0.2%에 그쳤던 프랑스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9%까지 상승했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 조사에서 마크롱 지지율은 44%(10월)→45%(11월)→54%(12월) 순으로 계속 상승 중이다. 일간 르 피가로는 "처음에는 마크롱에 대해 의욕만 앞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노동계 저항에도 굽히지 않고 소신껏 개혁을 추진하는 모습에 신뢰가 쌓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메르켈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있다. 지난 9월 총선이 끝나고 넉 달이 되도록 연립 정부 구성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재정 위기, 난민 문제 등 유럽의 주요 현안을 앞장서 처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총선에서 전체 709석 중 246석에 그쳐 과반수에 한참 모자란다.
13년간 총리직을 수행 중인 메르켈에게 식상함을 느끼는 국민이 많은 데다,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