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애꾸눈 잭?''애정의 조건?'

[이슈진단]

영미문학 대가 김욱동 교수 논문 기고…"잘못된 제목 때문에 영화 본질 흐려"

▣대표적인 오역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죽은 시인의 동아리'
'애정의 조건'→'애정의 시간'
'애꾸눈 잭'→'무소불위의 사나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번역에서 길 잃어'


우리말로 번역한 외화 제목의 상당 부분은 오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역된 제목은 관객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줄 뿐만 아니라 영화 내용을 호도할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미문학 번역의 대가로 불리는 김욱동(70) 서강대 명예교수는 국제저명학술지 '저널 바벨'(Revue Babel) 겨울호에 기고한 '외국영화의 한국어 제목 오역'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동음이의어 혹은 동철이의어(철자는 같지만, 뜻은 다른 단어)에 따른 대표적인 오역 사례. 김 교수는 이 영화에서 'Society'는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클럽 혹은 동아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교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 모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시인의 클럽(동아리)'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합하다고 제시했다.

▶1984년 작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도 '애정의 시간'이 더 올바른 제목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Terms'는 조건·조항·기간 등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영화 내용을 보면 조건이 아니라 기간을 가리키는 시간적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사랑과 추억의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영어의 속어나 구어 표현을 제대로 몰라 글자 그대로 번역한 제목도 많다. 말론 브랜도가 연출·주연한 1962년 작 '애꾸눈 잭'(One-Eyed Jacks)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한쪽 눈을 한 잭'(11번패)은 포커 게임에서 자주 와일드카드로 사용되는 데서 유래한 구어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며 "이 작품에서 애꾸눈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안 제목으로는 '무소불위의 사나이' 또는 '만능의 사나이'를 제안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역시 오역 사례로 꼽힌다. 이 작품의 원제는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실하는 그 무엇'(Translation is what gets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유명한 말에서 따왔다. 번역의 불가능성이나 문화 이해의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만큼 제목도 '번역에서 길 잃어' 정도가 적합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밖에 고유명사를 일반명사로 착각해 잘못 번역한 사례로 '늑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Wolves)을 꼽았는데 주인공의 특정 행위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주인공 인디언의 이름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도 고민을 상담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소년이 사용하는 아이디 또는 별명인 만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소년'정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 김 교수의 제안이다.

김 교수는 "우리말로 뜻을 번역한 외화 제목의 90% 이상이 오역"이라면서 "제목이 잘못되면 관객들은 영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의 본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외화 수입사들은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임의대로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원제를 발음 나는 대로 옮기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