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동물원들, 고릴라 보전위해 유전자, 성격 궁합 알고리즘 운용
동물학자 "인간 교분 연상 고릴라 짝짓기도 봤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몸무게 400파운드(181kg) 수컷 고릴라 바라카는 12살짜리 암컷 칼라야가 미국 수도 워싱턴의 동물원 `내셔널 주'에 도착할 때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암컷 2마리를 거느린 유부남이었지만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이 동물원의 유인원 사육사 베키 말린스키는 말했다.

칼라야는 도착 후 첫 30일간은 격리돼 있었지만 모습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바라카는 하루 종일 칼라야만 바라봤다. 마침내 합방이 허용되자 짝짓기가 이뤄지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 시사종합지 뉴요커는 12일(현지시간) 바라카와 칼라야의 '결혼'은 우연한 조합이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정확도를 높여온 고릴라 `궁합'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었다며 멸종 위기 고릴라를 보전하기 위한 '고릴라종생존계획(GSSP)'을 소개했다.

고릴라의 종 생존에 가장 적합한 짝짓기가 되도록 고안된 짝짓기 알고리즘은 "인간들의 데이팅 사이트보다 7년 앞서 개발"됐고 인간들 사이트보다 더 상세한 항목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더 신뢰할 수 있다."

나이, 경험, 사회화 기술, 혈통, 유전, 그리고 특히 성격의 조화 여부 등의 자료를 집어넣는 이 알고리즘은 "과학이면서 성격의 혼합물"이라고 GSSP 책임자 크리스텐 루카스는 말했다.

짝짓기 알고리즘이 제대로 짝을 찾았는지는 "두 고릴라가 만났을 때 내는 낯뜨거운 소리를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루카스는 덧붙였다.

바라카는 느긋하면서도 가족을 잘 돌보는 성격이고, 칼라야는 대담, 엉뚱, 창의적인 성격이어서 서로 잘 맞는다고 사육사 말린스키는 설명했다.

칼라야의 엉뚱한 성격은 늘 나뭇가지 사이에 높이 매어놓은 폭 2-3인치(5-7cm) 소방호스에 150파운드(68kg)의 몸을 아슬하슬하게 뉘고 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땅을 딛는 것을 싫어해서 동물원 측은 칼라야가 소방 호스에서 내려왔을 때 앉거나 발을 디딜 수 있게 빈 우유 팩을 깔아놓기도 했다.

칼라야가 소방 호스에서 잠들어 있을 땐 바라카가 2-3분마다 살며시 다가가 칼라야와 다른 가족들을 살펴본다. 물론 인근 방에 있는 독신 수컷 2마리에 대한 감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고릴라 짝짓기 궁합은 가장 좋은 1등급에서 가장 나쁜 6등급까지 단계가 나뉘어 있다. 드문 유전자를 가진 고릴라간 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후손 고릴라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공통 유전자를 가진 고릴라끼리는 번식을 못하게 한다. 새로운 암컷이 가족에 합류하더라도 피임약을 먹인다.

북미지역 50여 개 동물원 소속 인간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각 고릴라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혈통 자료와 성격적 특징 등이 적힌 고릴라 `가족관계부'를 토대로 짝짓기를 결정한다.

바라카와 칼라야는 궁합 1등급을 받은 사이다. 바라카의 '후궁'에 있는 암컷 고릴라 만다라와 키비비는 번식 비장려 대상이다. 이미 6마리의 새끼를 낳은 만다라에겐 매일 아침 으깬 피임약을 뿌린 요구르트나 바나나를 먹인다. 아홉 살 키비비는 지능은 내셔널 주에 있는 다른 5마리보다 뛰어나지만 바라카와 유전자 조합이 나쁘다는 이유로 자식 낳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고릴라는 수컷 한 마리에 2-4마리의 암컷이 한 무리를 이루는 일부다처제다. 새끼는 함께 살다가 10대가 되면 무리를 떠난다. 그러나 일부다처제 때문에 수컷 고릴라의 3분의 2는 짝 없이 산다.

독신 고릴라들은 따로 무리를 이뤄 살면서 암·수로 구성된 무리만큼이나 서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GSSP는 이들 독신 수컷 고릴라들을 위해 가능한 좋은 동반자끼리 만나도록 짝을 맺어주는 알고리즘도 갖고 있다.

고릴라들이 짝짓기 할 때 교미가 아닌 사랑의 교분을 나누기도 할까? GSSP의 책임자 루카스는 "암·수 고릴라가 인간 이외 종에서는 드물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교미하다 암컷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수컷의 가슴에 입술을 대고는 끝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키스였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과학자로서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고) 관찰한 것만 말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히 뭔가 미묘한 감정(tenderness)이 있었다"고 그는 뉴요커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