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금연과 금주,'경건한 신도'의 정형화 된 표본
일부 비신자들 '교회 등록 걸림돌' 비일비재
'술·담배=죄'는 역사적해석 따라 논란 분분
"권장하면 안되지만 정죄의 수단돼도 안될일"

# 무종교인 손모(40)씨는 교회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아직 교회에 등록하고 다닐지 결정하지 못했다. 손씨가 이 같은 고민에 빠진 것은 술과 담배 때문이다. 직업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다보니 술자리가 빈번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푸는 생활 습관 역시 단번에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아무래도 '술과 담배를 멀리하라'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영 불편하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마시면 안되나요?" 교인이건, 아니건 한번씩은 접해본 질문이다.

술과 담배는 교회와 세상의 간격을 확인할 수 있는 삶의 요소이다. 한인과 한국 교회는 음주와 흡연을 죄의 하나로 보지만 세상 사회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신교에서 금연과 금주는 상징처럼 인식된다. 흡연과 음주는 신앙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금연과 금주는 '경건한 신도'의 정형화된 표본으로 인정된다.

한국 개신교가 유독 술과 담배를 터부시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는 한국에 개신교가 전해지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교계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19세기 후반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미국 남부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개신교가 전해질 당시, 서구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조선시대 서민들의 모습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개신교 신앙에 입문하는 한국인들에게 믿음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증표를 요구했고 그 증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대다수 한국인들이 즐겼던 술과 담배를 끊는 일이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일제강점기의 민족경제 자립운동인 물산장려운동과 결합되면서 공감대를 얻고 현재와 같은 형태로 굳어졌다. 미주 지역의 한인 교회는 이런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정말 정죄의 대상일까.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 개신교에서는 종종 정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칼 바르트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살았고, 마르틴 루터는 아예 맥주 공장을 차렸는데 그들이 영생을 얻지 못했겠느냐는 항변도 나온다.

술을 마시는 것은 죄인가 아닌가. '술 취하지 말라'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논란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술 자체보다는 술에 탐닉하는 행위가 죄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신교가 흡연과 음주를 죄악시하는 것은 시대와 문화 변화를 거부하는 폐쇄성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있다. 아프리카 식인종들도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흡연과 음주를 문제시 삼는 것은 개신교의 이중성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종교 전문가들은 "교회가 흡연과 음주를 권장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술과 담배는 과감히 끊어야 할 음식임에 틀림없지만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목회자는 "오히려 술·담배하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신앙인의 표지처럼 이해되는 것은 마치 예배는 주일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으로 축소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술·담배 때문에 교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일을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