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모든 사거리 미사일 폐기 의제화하면 군축협상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거론되는 가운데, 연쇄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관심을 끈다.

미 백악관은 미일 정상회담 논의 내용과 관련,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북한이 모든 대량파괴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 아니라 노동, 무수단 등 일본과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입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의 뜻을 표한 것이었다.

핵탄두를 실은 ICBM이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미정상회담 의제로 ICBM 폐기를 주장할 것임은 명백해 보이나, 중거리와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뒷순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해 이를 관철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근래 비핵화 용의를 밝히기 전까지도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폐기되지 않으면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아울러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폐기 의지도 밝히지 않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핵 물질과 핵무기는 물론 탄도미사일 폐기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일 등 관련국들의 이해관계가 좀 더 복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상황을 보면 한일 양국은 이미 실전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고, 적어도 북한 주장대로라면 미 본토도 ICBM의 공격 대상이다. 물론 북한의 ICBM은 아직 탄두의 재진입 기술 등 면에서 실전배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ICBM만 저지하면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에서 사실상 자유로워지는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ICBM 개발중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중·단거리 미사일은 단계적·동시적으로 해결할 장기 과제로 넘길 가능성을 일각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당장 중·단거리 미사일을 본격적으로 의제화할 경우 북한이 남한의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를 주장하고 나서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 정부로선 '딜레마'인 셈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를 강조하는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비핵화 협상에서 본격적으로 의제화하면 우리가 보유한 미사일과 킬체인 등도 건드려야 하기에 비핵화 협상을 넘어 '군축 협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핵폭발물에 운반수단(미사일)이 결합하여야 핵무기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만 없어져도 핵무기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며 "둘 다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만, 운반수단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비핵화는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