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의 류현진(31)이 '팔색조'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시즌 3승에 입맞춤했다.

류현진은 2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산발 2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세번째 승리를 따냈다. 볼넷은 3개를 내주고 탈삼진은 8개를 빼앗았다. 지난 11일 오클랜드전부터 3연속경기 8개의 상의 삼진을 기록하며 '닥터K'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투구수 89개에 스트라이크는 58개였다. 그 어느 때보다 제구가 잘 됐다. 볼넷 3개도 제구가 안되서 내준 것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존 외곽 구석구석을 찌르며 타자들을 괴롭히는 승부를 펼친 결과였다.

호투의 비결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종을 완벽한 제구력으로 다양하게 구사한데 있다. 류현진은 이날 직구(25개), 커터(24개), 커브(19개), 체인지업(21개) 등을 비슷한 비율로 골고루 섞어 던졌다. 구속과 휘는 방향과 각도가 다른 구종을 완벽한 제구력을 동반해 섞어던진 4개 구종의 위력은 위력이 배가됐다. 같은 구종도 강약조절을 해가면서 마치 여러가지 구종을 던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여덟가지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절묘한 볼 배합에 워싱턴 타자들은 머리가 복잡해져 힘을 못 썼다. 

이날 류현진의 결정구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하게 공을 던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삼진 8개를 잡았는데 직구, 커터, 체인지업, 커브를 각각 2차례씩 결정구로 사용했다. 한 가지 구종에만 의지하지 않고 모든 구종을 결정구로 사용할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1회 2번타자 하위 켄드릭을 삼진으로 솎아내는 장면은 이날 류현진의 제구력이 동반된 완급조절 피칭의 정수를 보여준다. 146㎞직구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120㎞대 커브로 헛스윙을 유도한다. 다시 144㎞커터를 던졌다. 거의 스트라이크 처럼 보인 볼로 상대의 중심을 흔든 뒤 다시 뚝 떨어지는 120㎞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유도해냈다. 4회 3연속타자 삼진을 잡아낼 때는 체인지업과 포심패스트볼을 결정구로 썼다. 6회 5번타자 시에라는 커터로 삼진을 잡아냈다. 4회부터 7회까지 12타자 연속 범타로 상대를 요리하기도 했다. 위기라고 할만한 순간도 없었다.

여러가지 구종을 구사하더라도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 잘 듣는 공이 있기 마련이고 가장 자신있는 구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날 류현진은 모든 구종을 마음 먹은대로 완벽하게 구사했다. 류현진도 경기 후 "내가 오늘 던질 수 있는 구종의 제구가 다 잘됐다. 항상 말했듯이 제구가 안정되니까 좋은 투구가 가능했다"고 털어놨다.

류현진은 빼어난 구종 습득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켰고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갔다. 국내에서는 데뷔 시절 송진우, 구대성 등 대선배들로부터 체인지업을 전수받아 초특급 투수로 성장했고 메이저리그에 입문해서는 체인지업으로 안착한 뒤 클레이턴 커쇼로부터 배운 고속 슬라이더 등 매년 다른 구종을 추가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5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류현진은 들쭉날쭉한 등판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피칭으로 자신의 진가를 드높이고 있다. 특히 이날 맞대결 상대가 메이저리그 특급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라 그의 호투 가치가 배가됐다. 현지 언론은 직전 2경기에서 호투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 샌디에이고 등이 약팀인데다 상대도 5선발급이라며 류현진의 호투를 평가절하했는데 이런 목소리도 쏙 들어갔다. 3연속 경기 6이닝 이상 호투로 내구성에 대한 우려도 완벽하게 불식시키며 팀의 원투펀치급으로 재도약하고 있는 류현진이다.

이환범 선임기자 whit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