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초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

부모 관심과 지도감독아래서만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TV 속 픽션의 중독성과 위험에 대한 경계 늦춰선 안돼

1977년 9월 2일 오전 9시쯤 서울 풍납동 천호대교 남단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폭발적 인기의 미국 TV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에 심취한 6살 소년이 초인적 능력의 주인공 오스틴 대령처럼 점프해 보겠다며 9m 아래로 뛰어내려 숨졌죠. 소년은 평소 밤늦도록 시청할 정도로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고, 종종 안방 화장대에 올라가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지만 아무도 참변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날 소년은 다리 난간에 올라가, 따라온 두 친구에게 "내가 뛰어내리는 걸 잘 봐"라고 말하면서 몸을 날렸습니다. 조선일보가 다음날 사회면 톱으로 특종 보도한 이 사건은 어린이가 TV에 너무 몰입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불행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이 사고 이전에도 여러 어린이의 '600만불…'모방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5살 소년이 "나는 오스틴 대령이다"라고 외치며 3m 축대 아래로 뛰어내려 전치 3주 상처를 입었고, 어떤 어린이는 달려오는 차량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극성맞은 개구쟁이들치고 '600만불의 사나이'한 번쯤 흉내 내다가 부모에게 혼나지 않은 아이가 드물 정도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주 잠시 충격에 빠졌습니다. 언론은 'TV 공해' 'TV 해독' 등의 제목을 붙여 크게 보도하며 부모들의 주의를 당부했지만 소귀에 경 읽는 수준이었습니다.

역시, 사고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원더우먼'이었죠. 슈퍼맨의 여성 버전 격인 미국 SF 드라마 '날으는 원더우먼'에 심취한 4살 소녀는 1977년 12월 서울의 2층 집 옥상에서 6m 아래로 뛰어내려 크게 다쳤습니다. 1978년 4월엔 3살 소녀가, 1979년 3월엔 12세 소년이 각각 원더우먼 흉내를 내다 숨졌습니다. 1983년에도 옥상에서 슈퍼맨 흉내를 내던 어린이와 타잔 놀이를 하던 어린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떴고요.

미국 공상과학 드라마의 부작용이라는 여론이 일자 1978년 어느 신문은 '600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등의 극본·연출을 맡았던 윌리엄 제카까지 만났습니다. 인터뷰에서 "당신이 쓴 드라마 흉내를 내다가 한국 어린이들이 추락사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추궁성'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카는 "이런 일을 일반화해선 안 된다. 가공의 세계라는 사실을 어린이에게 가르쳐 줄 의무는 부모에게 있다. 그 책임을 매스 미디어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을 내놓았습니다.

'TV 흉내'사고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만, 이런 일이 산업화 시대의 한국에서 잇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오늘처럼 영악하지 못하고 순진하다 못해 미련했기 때문 아닌가 추측도 되지만 분명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나쁜 생활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일수록 판타지에 과도하게 몰입한다'는 당시 이상회 교수의 견해가 귀 기울일 만합니다. 즉 불만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는 좋은 환경의 어린이에 비해 TV의 환상적 세계에 훨씬 더 탐닉하고 한 번 빠지면 현실로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궁핍한 세상이 유죄라는 서글픈 분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경향신문 1977년 9월 7일 자)

이런 TV 흉내 사고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일본 오사카의 6세 소녀가 만화영화를 본 직후 하늘을 날아다니는 주인공을 흉내 내다 43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사로잡는 TV 속 픽션들의 중독성과 그 위험에 대한 경계를 여전히 늦춰선 안 된다는 경고 같아 보입니다.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는 결코 아닙니다. 분명 아이들은 하루 5분 놀이로 아이는 세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부모님의 관심과 지도감독아래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