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PVID 강조·WMD로 폐기목표 확대 거론…北, 美日에 '견제구'
전문가 "협상 앞둔 샅바싸움…판 깨기엔 양측 다 너무 멀리 와"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세기의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과 미국이 일정·장소 발표에 앞서 치열한 기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기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보다 강도높은 'PVID(영구적이며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새 목표를 언급하는 한편 폐기의 대상으로 생·화학무기까지 포괄하는 대량파괴무기(WMD)를 거론하는 등 북한이 넘어야 할 허들의 높이를 올리는 모습이고, 북한은 그런 흐름에 반발하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여러차례 "이미 결정됐다"고 밝힌 북미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발표가 늦춰지고, 임박한 것으로 여겨졌던 북한의 미국인 억류자 송환이 지연되는 것도 최근 북미 신경전의 영향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라고 할 비핵화 이외에 추가 요구를 일본과의 협의를 통해 전달하고 있어 보인다.

우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과의 지난 4일(현지시간) 회동에서 북한이 보유중인 생물·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무기(WMD)와 중·단거리를 포함한 모든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실현하기 위해 긴밀히 연대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일본 언론을 통해 나왔다.

여기에 더해 볼턴 보좌관과 야치 국장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협력키로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주목할 대목은 북한 측이 대미 협상 카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를 선언하면서도 중·단거리 미사일과 관련해선 일본과의 거래를 위해 남긴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여 해당 사안으로 대북 압박을 벌인 점이다.

아울러 일본이 주장하는 납치문제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삼을 기미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북한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납치문제는 인권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비핵화 의제 중심의 회담 분위기를 흐릴 수 있어서다.

비핵화에 더해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WMD 폐기까지 요구하면, 북미 정상회담의 '전선(戰線)'이 확대될 수 있어 북한으로선 수용하기 쉽지 않다.

북한은 이 같은 비핵화 이외에 추가적 압박이 일본 언론을 통해 나오는 데 주목하는 듯하다.

이런 탓에 북한은 당국은 물론 관영언론 매체를 통해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반격'에 나선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에 보낸 저강도 경고로 해석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대외 선전매체인 '메아리' 등은 6∼7일 일본의 대북 압박 유지 기조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미국과 어깨동무해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려는 일본에 경계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최종 확정을 앞두고 양측이 물밑 조율 과정에서 좀 더 높은 고지를 점하기 위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실제로 핵 문제에서 WMD로 '확전'을 꾀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최대 난제인 북핵 검증 등에서 좀 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성동격서'식 압박을 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현재 상황을 "샅바 싸움의 일환"이라고 평가하고, "미국은 일단 최대치를 거론해 놓고 협상 과정에서 현실적인 접점을 찾으려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양측 다 판을 깨기에는 지금 너무 많이 왔다"며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공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예상된 기 싸움이라고 본다"며 "미국은 이참에 북한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듯하고 북한도 그들 기준에서 적절한 보장을 받는 비핵화 협상을 하려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 발언은 공식 성명이 아니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인데 이는 성명보다 한 단계 낮은 의사 표시인 만큼 북한도 수위조절 하는 모습으로 평가한다"고 부연했다.

jhcho@yna.co.kr